박수정 변호사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상담원들은 요즘 성폭력 피해자에게 ‘신고하라’고 말하기가 두렵다고 합니다. 최근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소했다가 오히려 무고죄로 기소되는 사례가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한 지방검찰청은 ‘성폭력 무고 적극수사 및 엄벌’ 방침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소장님은 “검찰이 성폭력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무고죄를 적용해 성폭력 피해자들의 입을 막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최근 우리 법인은 한국여성의전화 요청으로 성폭력 무고사건 피고인 A씨의 변호를 맡아 공익사건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사건 내용은 이렇습니다.
A씨는 회식에 참석했다가 맞은 편에 앉은 남성으로부터 강제 추행을 당했습니다. 다음날 B씨가 가해자에게 붙잡힌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며 따지자, 가해자는 사과하고 체크카드를 건네며 ‘치료비를 결제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병원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오자, 가해자는 범행 사실을 부인하고 화를 내며 병원비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모욕감을 느낀 A씨는 가해자를 고소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회식에 참석한 이들은 ‘강제추행 같은 일은 없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도 A씨에게 불리하게 나왔습니다. 가해자와 그 측근들은 A씨가 ‘돈을 노리고 거짓 고소를 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가해자는 불기소처분을 받고 오히려 A씨가 무고죄로 기소되었습니다. A씨는 왜 가해자가 아닌 자신이 재판을 받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 무고지원팀에서는 이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주장과 함께 성폭력 무고사건의 일반적인 문제점을 큰 틀에서 함께 지적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피해자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A씨처럼 당차고 야무진 말투, 염색한 머리 같은 것들은 ‘성폭력 피해자 같지 않다’는 이유로 불리하게 작용하기 일쑤라고 합니다. 흔히 “피해를 당한 것이 사실이라면 왜 그때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느냐”고 물으며 피해자를 의심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치심과 당혹감 때문에, 혹은 술자리 분위기를 깰까 봐, 곧바로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여러 활동가와 자원봉사자 분들이 열심히 자료 조사를 하고 변론 방향을 함께 고민하며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이분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며 저도 배우고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이번 공익소송을 계기로 많은 분들이 성폭력 무고 사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