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아동양육시설) 원장님이랑 갔어요. 그냥 처음에 갈 데가 있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가면서 (어디 가는지) 이야기해 주셨어요. 처음에 (소년분류)심사원 갔다가 나갈 줄 알았는데, (재판에서) **(6호처분시설)에 들어가야 된다고 해서 그 때는 울었어요. 6개월 가는지도 몰랐고, 가서 알았어요.”
- 국가인권위원회, <아동ㆍ청소년 인권보장을 위한 소년사법제도 개선 연구>, 127쪽
“소년사법제도가 왜 아동인권의 문제일까”
* 이하 두루에서 수행한 <국가인권위원회, 아동ㆍ청소년 인권보장을 위한 소년사법제도 개선 연구> 내용을 요약하여 제시하였음을 밝힌다.
두루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2018년 4월부터 12월까지 약 8개월간 ‘아동ㆍ청소년 인권보장을 위한 소년사법제도 개선 연구’를 수행했다. 위 이야기는 이 연구의 심층면접조사에 참여했던 한 아동의 진술 중 일부이다. 과연 성인이라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구금되는 시설에 가면서도 가는 곳이 어디인지, 그 곳에서 얼마나 갇혀있어야 하는지, 내가 받은 재판의 결과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아무에게도 듣지 못했다.
최근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등 일부 소년범죄가 언론에 보도되며 소년범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과열되었다. 소년사법제도를 축소하거나 폐지하자는 개정안들은 쏟아져 나왔다. 이에
대해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소년범죄의 재범률 증가의 근본 원인을 다루기보다 엄벌주의를 내세우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소년사법제도란 범죄 혐의를 받거나 법을 위반한 아동을 위한 특별한 형사절차를 말한다. 현행법상 소년법은 만 19세 미만인 경우에 적용된다. 소년사법제도의 목적은 아동의 회복과 사회복귀에 있다. 아동과 청소년, 보호가 필요한 아동, 위기청소년,
가정 밖ㆍ학교 밖 청소년 등 사회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집단이다. 소년사법제도
또한 아동의 잠재성에 대한 개별적 배려와 존중을 전제로, 연속적 발달과정에 있는 아동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설계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두루는 소년사법제도가 아동 최상의 이익을 실현하는 길에 함께
하고자 본연구에 뛰어들었다. 두루 강정은ㆍ엄선희 변호사 외에도 아동인권단체인 국제아동인권센터
정병수 사무국장ㆍ김희진 변호사ㆍ전미아 연구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현소혜 교수, 법무법인 지향 김수정 변호사, 법무법인(유) 지평 최정규ㆍ박보희ㆍ이샘 변호사가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아동 당사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연구”
그 동안 소년사법제도를 아동인권에 관한 국제인권규범을 기준으로 검토한 연구는 충분하지 않았다. 소년사법 종사자를 위한 아동인권교육 관련 연구는 전무했고, 아동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는 조사는 찾기 어려웠다. 연구는 우선 국제인권규범의 분석과 검토를 바탕으로 국내 법령 체계 및 현황을 조사하고, 국외 사례를 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아동 인권 중심의 국제인권규범을 분석해 우리 현실에 맞는 10가지 아동인권의 유형을 추출했다. 정보접근 및 알 권리, 부모 기타 보호자의 참여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 받을 권리, 개별처우를 받을 권리,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신체구속과 무력의 제한에 관한 권리, 모니터링 및 진정에 관한 권리, 관계자의 전문성 및 역량 강화, 사회복귀의 지원이다. 이 10가지 아동인권 유형을 기준으로 국내 소년사법제도 이행실태조사에 들어갔다. 소년사법제도를 경험한 아동 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심층면접조사를 시작으로, 판사, 국선보조인, 소년원 종사자, 소년 보호관찰 종사자까지 소년사법제도 종사자 전반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심층면접조사를 통해 양적 조사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했다. 특히 연구에서 만난 아동들은 이번 연구의 밑바탕이자 중심이었다.
“아동 인권 보장을 위한 소년사법제도 개선 방안”
소년사법제도의 국내 이행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형사절차단계별로 보았을 때 (1) 수사ㆍ조사단계에서는 수사 대상이 된 아동 피의자에 대한 필요적 국선변호ㆍ국선보조가 필요하고, 부모 기타 보호자의 참여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아동의 개별처우를 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문적 조사제도를 실질화해야 한다.
(2) 재판단계에서는 필요적 보호사건의
범위를 확대하며 실질적인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신속하게 국선보조인을 선정하되, 국선보조인의 재판기록의 열람ㆍ등사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소년분류심사원
위탁과 같은 임시조치 결정의 요건을 마련하고 이의제기권을 보장해 구금의 최후수단성, 보충성을 실천해야
한다. 하고,
보호처분을 다양화하고, 회복적사법 실천을 위한 대안적 처분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실태조사에서 아동이 재판을 받기 위해 3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소년보호재판의 관할 또한 개선되어야한다.
(3) 집행단계에서는 소년분류심사원
및 소년원을 지역별로 확대 설치해야 한다. 소년구금시설의 과밀화 현상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이다. 수용된 아동의 면회, 서신교류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처분변경을 위한 심사를 정기적으로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CCTV 등 전자영상장비를 이용한 관리방식을 개선하고 진정제도에 관한 아동 접근가능성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인터뷰에서 아동이 성인과 함께 유치장이나 구치소에서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구금된 사례들을 여럿 확인할 수 있었는데, 미결구금시 아동은 반드시 성인과 분리되어 수용되어야 한다. 또한
유치장 내지 구치소, 소년분류심사원, 6호처분시설, 소년원에 수용하는 것은 모두 아동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자유박탈조치이다.
소년보호사건과 소년형사사건을 불문하고 이와 같은 시설에 수용되는 기간은 모두 형 집행기간 또는 보호처분기간에 산입되어야 한다. 일부 소년원에서는 40% 가량의 소년들이 정신과적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소년원에서 이뤄지는 정신과적 치료에 대한 모니터링도 필요하다. 신체구속과
무력제한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고 대안적 조치로 전환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실태조사 과정에서 종사자들은 소년사법 영역은 별도의 전문성 있는 인력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소년전문법원을 설립하고, 소년사법 전담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 때 전담인력인 종사자들에 대한 의무화된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아동인권 교육훈련이 필요하며, 아동권리 교육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소년사법절차의 중심에 법원이 있다는 점에서 법원을 매개로 한 종사자 간 교류와 협력도 제도화해야 한다.
소년사법제도의 개선 방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아동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제도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년사법은 발달과정에 있는 아동의 특수성과 회복가능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죄를 짓지 않아도 죄를 범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년재판을 받는 우범소년 규정 또한 삭제해야 한다. 우범소년이 규율하는 아동문제는 사법적 개입이 아닌 복지지원체계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연구에서는 소년사법 관련 종사자들의 아동인권 옹호 역량을 증대시키고, 아동인권 감수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아동인권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개발했다. 프로그램을 확정하기에 앞서, 연구진들은 종사자들에게 교육교재 개발에 관한 자문을 요청했다. 현재 소년사법 종사자 간에는 교류의 기회가 거의 없고 관련 정보가 서로 공유되지 않고 있었다. 교육 자문 참여자들은 무엇보다 다른 직역의 소년사법 종사자를 만나 아동 최상의 이익을 함께 고민할 수 있어 매우 뜻 깊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앞으로 남은 과제”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동과 같이 보호환경이 취약한 아동의 경우, 소년사법제도에 한 번 발을 들이면 성인이 될 때까지 빠져나가지 못하는 문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회복과 사회복귀’라는 소년사법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이번 연구는 그 대상이 비행 예방이 아닌 ‘비행 후 처분’이었기에, 추출한 10가지 아동인권 유형 중 ‘사회복귀의 지원’을 다루지 못했다. ‘아동의 사회복귀와 회복’은 추후 중요한 연구과제가 되어야 한다. 소년사법제도는 법률가뿐만 아니라 복지, 심리, 의료 등 다학제적 접근이 가능할 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아동보호체계, 아동ㆍ청소년복지지원체계와 맞물려 있어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등 관련 부처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과제이다.
아동권리 실현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의 주체는 바로 국가이다. 두루는 국제아동인권센터 등 관련단체와 연대하여 자유가 박탈된 아동에 관한 국제연구에 참여하면서 자유박탈아동에 대한 대한민국 법ㆍ제도ㆍ정책 현황을 조사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을 위한 대한민국 제5ㆍ6차 심의대응도 함께하고 있다. 소년사법제도가 아동권리에 기반해 접근되고 실천되기 위해서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이행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이번 연구에서 제시한 제도개선조치가 현실화되어 현장에서 잘 적용될 수 있기 위한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