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협약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장애인권리협약(이하 “CRPD”)은 장애인의 인권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국제인권조약이다. 2001년 UN총회에서 제안되어, 여러 논의를 거쳐 2006년 12월 제61차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고, 2008년 5월 3일부터 발효되었다. 우리나라는 2007년 3월 30일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가입 서명을 하고, 2008년 6월 16일에 대통령 재가를 받았으며, 2008년 12월 2일 국회에서 CRPD의 비준동의안이 통과되어 2009년 1월 10일부터 국내에 발효되었다. 우리나라는 제25조 마항과 선택의정서[1]는 비준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 정부는 2차례 이행에 관한 답변서를 제출했고, 1차례 심의를 받았다. 이번에 제출된 정부의 보고서를 보면 장애인권리위원회(이하 “위원회”)의 지난 심의에 기초한 권고를 대부분 수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두루가 2018년에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 이행이 미흡하거나 불충분하였다.[2]
“장애인권리협약은 법률이다. 진짜?”
헌법 제6조 제1항에 따르면, 헌법에 의하여 체결, 공포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CRPD는 헌법에 따라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았으므로 국내법률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의 권리와 관련된 소송에서 CRPD를 법률규범으로 원용한 사례는 거의 찾기 어렵다. 최근에는 장애인차별 관련한 각종 소송에서 장애인들이 CRPD를 원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나, 법원이 CRPD를 판결의 근거로 명시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CRPD는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사이트에서 현행 법령으로 검색되지 않고,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사이트에서는 전혀 검색되지 않는다. 헌법상 국내법률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된다는 말이 무색하다.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 CRPD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두루는 이행법률을 만드는 것도 제안하였다.
“정부의 역할”
CRPD는 기업이나 개인이 아니라 당사국(정부)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정부가 각 조항별로 내용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적인 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다른 말로 ‘이행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행체계에서는 담당부서가 필요하다. 현재는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정책국이 담당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서 잠깐, 장애인과 관련된 문제는 모두 보건복지부 장애인 관련 부서로 연결되는 지금의 현실, 괜찮을까? 특히 CRPD는 인권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복지, 서비스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법무부 인권국도 마땅히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법무부가 보인 소극적인 태도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법무부 인권국이 CRPD의 주무부서가 되는 것은 안 될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보건복지부의 소관으로만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주무부서가 꼭 한곳일 필요는 없으니, 두 기관이 함께 주무부서를 맡는 것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장애부 국무장관을 두고 있는 프랑스처럼 국무총리실에 장애인정책조정실장을 두고 장애 정책을 총괄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는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조정기구로 있지만, 형식적으로 운영된다는 비판이 많다.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장애인정책을 ‘수립’하고 ‘조정’하는 관제탑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위원회 소집을 정례화하여 현안을 파악하고 거시적인 정책의 방향을 미리 정하여야 하며, 대통령, 국회, 법원,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 적극적인 정책자문, 조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위원들을 위촉할 때 전문성을 가진 장애인 당사자들을 반드시 포함시켜야한다. 실질적으로 운영되려면 사무국도 필요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위원회의 운영이 공개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보건복지부장관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5년마다 장애인의 복지, 교육문화, 경제활동, 사회참여 등을 아우르는 정책을 수립,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이 CRPD와 연동된다면 CRPD를 이행하기 위한 별도의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매년 CRPD를 기초로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위 사업계획을 매년 평가하여 추진 실적을 보고하는 일이 CRPD 이행을 자체적으로 점검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선택의정서 가입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국내 절차와의 충돌이나 국제적인 관리, 감독의 부담은 적절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이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선택의정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 선택의정서는 가입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할”
민간에서는 정부가 CRPD를 이행하는 것을 잘 감시, 감독해야 한다. 장애인과 장애인단체는 그동안 민간보고서를 통해 국내의 현황을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알리고, 적극적인 권고를 이끌어냈다. 이제는 나아가 모니터링 역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가 모니터링 기구로 별도의 의견서를 내고 있는데, 인권위의 현재 인적, 재정적 상황과 독립성을 고려할 때 적극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기가 어렵다.
이제는 별도의 모니터링 기구(센터)의 설치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장애인권리협약은 물론 다른 인권조약도 아우르는 모니터링 센터도 가능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니터링 과정에 장애인, 장애단체들이 직접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참여권은 법률로 보장되어야 하고, 완전하게 참여하려면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 장애인의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 장애인단체나 장애인이 위촉위원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위원회가 비정기적으로 유명무실하게 운영된다는 비판이 있을 뿐 아니라 각 부처 장관이 당연직위원으로 대거 포함된 상태라 장애인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따라서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심의하거나 보건복지부장관이 매년 위 계획의 추진성과를 평가할 때 위촉위원들의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도록 규정을 강화하는 것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을 개정하거나 별도의 이행법률로 CRPD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면서 장애유형과 정도를 고려하여 최대한 장애인당사자 참여를 보장하고 남녀 비율은 50%로 맞추며, 예산 지원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나가며”
두루가 수행하는 장애인 차별구제 소송에서 법원이 ‘차별은 CRPD 위반이라는 점’을 판결문에 분명하게 적어주면 좋겠다. 장애인들이 CRPD의 의미를 잘 알고, 장애인복지법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처럼 CRPD를 근거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부가 CRPD를 모든 정책에 반영하고 당당히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심의를 받으면 좋겠다. 2014년 대한민국 심의에서 어느 위원이 “한국은 장애인의 파라다이스 같다”고 말하여 많은 한국 장애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1] CRPD 제25조 마항은 “생명보험 제공에 있어서 장애인의 차별 금지”를, 선택의정서는 CRPD 위반시 장애인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직접 진정하고 위원회가 조사를 할 수 있는 절차를 정한 부속서이다.
[2] 이하의 내용은 임성택 외 11,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에 관한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2018)의 내용을 요약, 풀어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