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 타기가 참 어려운 시기입니다. 어쩌면 바이러스에 노출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지요. 어떤 이들에게는 대중교통 이용이 피부에 와 닿는 두려움이란 사실을, 그 두려움이 일상이란 것을 알고 계신가요?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지하철역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어쩔 수 없이 리프트를 이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리프트를 이용할 때마다 수치심과 공포심을 느낍니다. 이동할 때마다 울리는 조잡한 경보 소리, 아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찔한 높이와 각도, 거북이처럼 느린데다 사방은 뚫려 있기까지. 혹자는 이 기계를 ‘살인 기계’라 부릅니다.
저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함께 일하는 변호사입니다. 그리고 2017년, 장추련을 통해 故 한경덕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故 한경덕님은 신길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려다 사고로 계단 아래로 추락하였고, 끝내 가족들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호출버튼이 계단과 너무 가까이 있었고, 계단이 너무 높았고, 또 안전장치가 없었습니다. 이 모든 안일한 대처가 겹쳐 큰 비극이 되었습니다. ‘미처 알 수 없었다’, ‘매번 이용하던 곳’, ‘휠체어 조작 실수’ 라기엔 신길역의 리프트 배치는 무척 위험하고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故 한경덕님의 가족들은 사고 직후 신길역 관계자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과를 받으려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개인의 책임’이란 것이었습니다. 리프트 이용 중에 사고가 난 것이 아니라, 호출버튼을 누르기 전에 사고가 났기 때문에 휠체어 조작 실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가족들은 단지 배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소송을 해야만 했습니다. 개인의 책임이 아닌, 서울교통공사의 책임이란 것을 밝혀내야 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소송 과정에서 이 사고에 어떤 잘못이나 책임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사고는 예상할 수도 없었고, 오히려 고인이 타인의 도움 없이 무리하게 계단에 접근하여 일어난 사고라며 고인의 실수를 문제 삼았습니다. 재판에 방청을 온 장애인 당사자와 단체들에게
소송 과정을 설명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편의시설의 설치를 의무가 아닌 ‘배려’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승강기 설치는 종종 예산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미뤄져 왔습니다. 장애인들은 시혜적인 조치나 혜택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정당한 이유’가 아닌 이상, 이를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입니다. 단지 예산이 문제라면, 이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넘치지만, 차별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차별인지조차 모릅니다. 어쩔 수 없이 차별을 할 수 밖에 없다며 차별에 대한 이해를 바라곤 합니다. 단지 리프트가 위험해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승강기를 설치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강기가 아니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승강기를 설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디 서울교통공사가 사고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모든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끝)
언론사에서 기고글 보기 : 지하철 역사 내 승강기 설치, 배려가 아닌 의무입니다.
담당 변호사 최초록 (02-6200-1916)
두루는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주시는 여러분들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우리 사회에 더 많은 변화를 이끌기 위해 변호사들을 후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