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헌법재판소는 2020. 8. 28. 선거정보접근권과
관련된 헌법소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① 육군훈련소에서 군사교육을 받던 청구인이 대통령선거 대담·토론회의 시청을 금지당하여 선거권 및 평등권을 침해받았다며 청구한 헌법소원심판을 기각하였다.
② 시각장애인인 청구인이 점자형 선거공보 면수를 책자형 선거공보 면수 이내로
제한한 공직선거법 규정(이하 ‘이 사건 선거공보 조항’)으로 인해 선거권 및 평등권을 침해받았다며 청구한 헌법소원심판을 기각하였다.
③ 청각장애인인 청구인이 방송광고, 후보자
등의 방송연설, 방송시설주관 후보자연설의 방송,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대담·토론회의 방송(이하 ‘이 사건 선거방송’이라 한다)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수화언어(이하 ‘한국수어’라 한다) 또는 자막의 방영을 의무사항으로 규정하지 아니한 공직선거법
규정(이하 ‘이 사건 한국수어•자막조항’)으로 인해 선거권 및 평등권을 침해받았다며 청구한 헌법소원심판을 기각하였다.
2. 군사훈련생의 선거정보접근권에 대한 최초의 문제제기
군사교육을 받는 훈련생에게 대담·토론회
시청을 금지한 것에 대하여는 재판관 전원이 선거권과 평등권 침해가 아니라고 보았다. 대담·토론회를 시청할 경우 교육훈련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훈련병들은
교육훈련에 집중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번 헌법소원은 군사훈련생의 선거정보접근권에 관한 최초의 문제제기였다. 이번 헌법소원청구를 대리한 두루의 이상현 변호사는 “이번 결정은
훈련생에게도 투표권은 있지만, 투표권 행사를 위해 인정되어야 할 선거정보접근권은 사실상 박탈된 상태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군대라는 특수성 앞에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적 권리를 쉽게 양보한 것”이라며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3. 시각, 청각장애인의 선거정보접근권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답보 상태
시각장애인이 점자형 선거공보를 통해 선거정보에 접근할 권리에 관하여 과거
헌법재판소는 두 차례 합헌 결정을 이미 내렸다. 하지만 과거 결정 중에는 “점자형 선거공보는 시각장애선거인이 정치적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핵심적 수단이므로, 점자형 선거공보의 작성 여부를 후보자의 임의적 선택사항으로 규정한 것은 시각장애선거인의 선거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본 반대의견(4인)이
있었고(헌재 2014. 5. 29. 2012헌마913), ‘적어도 대통령선거에서는 책자형 선거공보와 같은 내용이 수록될 수 있도록
점자형 선거공보의 작성면수를 제한하지 아니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본 별개의견(4인)도 있었다(헌재 2016. 12. 29. 2016헌마548 결정).
청각장애인이 후보자의 방송광고, 후보자
등의 방송연설, 방송사의 후보자연설 방송, 선거방송토론회의
대담•토론회에서 제공하는 자막과 수어통역을 통해 선거정보에 접근할 권리에 관하여 과거 헌법재판소는 역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때에도 단순히 재량사항으로 규율하고 있는 것은 차별방지의무와 평등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반대의견(1인)이 있었다(헌재 2009. 5. 28. 2006헌마285 결정).
시간은 흘렀지만,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헌법재판소는 점자형 선거공보의 면수를 제한하지 않으면 국가가 과다한 비용을
부담할 것이라거나, 한국수어·자막을 의무로 할 경우 선거비용이
과다하게 소요될 수 있고 방송사업자의 보도·편성의 자유와 후보자·정당의
선거운동의 자유를 제한할 여지가 있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하였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핵심적인
권리인 선거권의 주체로 시각, 청각장애인을 인정한다면 엄격한 비례심사를 통해 선거권 침해를 인정하였어야
한다.
2016년 점자법과 한국수화언어법이 만들어졌다.
점자법은 ‘점자가 한글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문자이고, 국가를 포함한 공공기관등은 점자의 사용을 차별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4조).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제1조), ‘농인이 한국수어
사용을 이유로 모든 생활영역에서 차별받지 아니하고, 한국수어를 통하여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제2조
제3항).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 앞에 점자법과 한국수화언어법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한편,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하여는 3인의 재판관(재판관 이선애, 이석태, 김기영)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그들은 시각장애인에게 점자형 선거공보는 후보자·정당에
대한 정치적 정보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수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핵심적 수단이라는 점, 시각장애인에게
점자형 선거공보 우편 발송, 선거공보 전자파일 다운로드 등 다양한 선거공보의 수령방법을 제공하고, 그 중 자신에게 용이한 방법을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시설이나 비용 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 점자형 선거공보의 작성·발송 비용이 시각장애인의 선거정보 취득을
희생해야 할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점을 들어 이 사건 선거공보 조항이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에 대하여 ‘후보자·정당에 관한 정치적 정보 및 의견’에 대한 알 권리를 내포하는 선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의 헌법적 의의 그리고 민주정치의 발전이라는 공익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선거공보조항에
의해 침해되는 공익과 시각장애인이 입는 불이익은 현저한 반면, 점자형 선거공보의 작성·발송 비용 등은 국가적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기 어려워 법익의 균형성에 반한다고 보았다.
또한 그들은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여 국어를 이해하기 어려운 청각장애인에게 선거방송은 선거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
고시에 따라 방송사업자들은 한국수어·자막방송을 할 수 있는 인력, 설비나 기술수준을 이미 확보하고 있으므로, 이들에게 이 사건 선거방송에서
한국수어·자막방송을 할 의무를 부과하더라도, 과다한 비용을
지출하거나 보도·편성의 자유 및 선거운동의 자유를 크게 제한하게 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 중 3인의
재판관(재판관 이선애, 이석태, 김기영)의 반대의견을 지지한다.
20대 국회에서 347건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되었고, 그 중에서는 이 사건 청구처럼 장애인의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지만(의안번호 10202 김부겸의원 대표발의),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사단법인 두루의 이주언 변호사는 “3인의
반대의견이 우리 사회에서 다수의견이 될 수 있도록 계속 입법운동, 소송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장애인들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