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로 공항 판결과 유럽 기후법안 제정에 관한 소고
지현영 변호사
런던 히스로 공항은 이른바 영국의 관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군사용으로 만들어져 1946년 5월 31일 개항하였고 그 후 가장 많은 국제선 승객이 오가는 분주한 공항이 되었다. 영국에서 가장 크다고 하지만 12.14k㎡의 규모로, 인천공항(47K㎡ 목표)의 1/4에 불과하다. 터미널 안의 동선이 복잡다단해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각종 만족도 조사에서 하위를 기록하는 악명은 불명예이다. 게다가 활주로는 2개 뿐이라 엄청난 수요를 처리하기 위해 런던 상공에 복잡한 항공기 접근/대기 루트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상황을 개선코자 2009년에 본격적으로 나온 제3활주로 건설 계획은 2018년이 되어서야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환경 파괴를 이유로 제3활주로 건설을 격렬하게 반대해온 공항 근처의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즉시 소송을 제기했고, 2019년 1심에서 패소하였다. 이에 불복한 원고들이 항소 법원에 소를 제기했는데, 지난 2월 27일(현지 시간 기준) 히스로 공항의 제3활주로 건설 계획 승인은 ‘파리기후협약’에 따른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감축 의무를 고려하지 않아 위법하다는 역사적인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이다.
‘파리기후협약’은 2015년 12월 12일 파리에서 열린 ‘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본회의(COP21)’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주도에 의해 195개 당사국이 채택하였다. 이는 2020년 이후 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국가들의 약속으로,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온도가 2℃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원은 정부가 파리기후협약을 고려하여 공항 국가정책성명서(ANPS)를 재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법원이 제3활주로 확장 자체를 금지하는 결정을 한 것은 아니며, 그러한 권한이 있지도 않다고 선을 그었다. 히스로 공항 측은 파리기후협약을 고려하여 국가정책성명서를 보완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해 제3활주로의 운명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지금까지 이론상의 목표처럼 여겨졌던 파리기후협약 상의 온도 목표가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시한 최초의 판결일 뿐 아니라, 영미법 상 법과 같은 효과를 갖는 구체적인 판례법이 탄생하였다는데 있어서도 지대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앞으로 영국 뿐 아니라 당사국들은 국가 인프라 계획에 대해 파리기후협약 상의 감축 목표를 고려했냐는 환경단체들과 지역 주민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히스로 공항의 John Holland-Kaye 사장은 ‘대영제국의 관문을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 빼앗기는 자존심 구기는 상황을 만들 셈이냐’, ‘제3활주로 없이는 Global Britain도 없다’며 영국인의 국뽕의식을 대단히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하루에 700대의 비행기를 더 수용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이익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비롯한 대기오염물질, 지역 주민들이 입는 터전 상실 및 환경 피해를 형량 해 볼 일이다. 또한 영국과 영국인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한 전 세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고 공항 확장 중단 결정을 하였으니 이로 인한 불편을 양해해달라는 전략을 취한다면 이는 전 세계의 유일무이한 국가 홍보가 될 것이며, 방문객들은 도착하는 즉시 영국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항소법원은 이 판결의 처음과 끝에서 히스로 공항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은 사법부의 결정과 무관하며(none of the court's business), 사법부는 오로지 그리고 전적으로 법적 문제에 관해서만 응답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는 사법부의 소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라는 오랜 국제관습법의 엄중함을 돌이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최근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목표에 합의한 EU 회원국들의 정치적 약속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기 위한 EU의 유럽 기후법안이 제정되었다. 유럽 기후법안이 유럽의회와 27개 EU 회원국의 의회를 통과하면 이는 EU에서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러한 성과에 찬사를 기대했던 유럽의회는 그레타 툰베리를 포함한 청년 기후활동가들로부터 중간 단계의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것은 감축의지가 부족하다는 비난의 몰매를 맞았다.
자국민들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하지만, 유럽은 지구의 위기를 절절히 실감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렇듯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언론사에서 기고글 보기 : [사이언스프리즘] 히스로공항 판결과 유럽 기후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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