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자립생활과 시설 폐쇄법
- 다 함께 살기 위한 법을 만듭니다 –
이주언 변호사
1. 탈시설이란 무엇인가?
탈시설은 시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시설 밖으로 나와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의 의뢰인 중에는 탈시설한 장애인 당사자가 있습니다. 이 분은 시설에 살 때 시설이 산 속 깊은 곳에 있어서 외출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시설이 도시 속에 있어도 장애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시설에서 나오기 힘든데, 시설에서는 활동지원을 받을 수 없으니 외출이 거의 어렵습니다. 이것
외에도 시설에 살면 제약이 많습니다. 서울에 있는 시설에서 나온 제 지인은 뇌병변 장애가 있습니다. 지인에게 시설에서 나오니 무엇이 제일 좋냐고 물었을 때 그는 “밥
먹고 싶을 때 먹고, 술 한잔 마시고 싶을 때 술도 마실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습니다. 시설에서의 생활은 시설에서 정한 규칙대로 단조로운
생활이 반복되어 사람이 무기력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권침해가 발생하여도 문제제기가 어려워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탈시설은 “시설에서
나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시설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환경과 제도적 뒷받침이 더 중요합니다. 활동지원, 주거, 소들, 보건 등 지역사회에서 자립이 가능하도록 지원되지 않으면 탈시설은
불가능합니다. 위에서 말한 제 지인은 시설에서 나와 자유를 만끽하다가 몇 달 뒤에 저에게 우울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외로워서 죽고 싶어요.” 시설에서
나와 임대주택에서 활동지원을 받으면서 살게 되었지만 그는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서 외딴 섬처럼 가만히 있었습니다. 시간이 더 흘러 야학을 나가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집회 현장에서
함께 목소리를 높이면서 진짜 탈시설에 성공하였습니다.
두루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는 “탈시설”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시설이 아닌) 제약이 최소화된 지역사회의 일반 주택에서 (인간 존재와 삶에 필수적인) 개인의 자유, 자율성, 사생활을
보장받고 (이를 위한) 소득 및 서비스를 지원받으며, 자신의 연령대와 선호에 맞게 사회의 일원으로 포함되어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적극적으로 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가로막는 저해요인을 없애고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개인별 지원을 실시해야 한다.“
2.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
우리 헌법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고 있습니다. 탈시설은 권리일까요? 권리가 아니라면 국가는 장애인, 치매 노인처럼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시설에서 살게 할 지, 시설이
아닌 곳에서 살게 할 지 적절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탈시설을 권리라고 본다면, 국가가 임의로 장애인들에게 시설에서 살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탈시설이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헌법에는 거주⋅이전의 자유(제14조)가 있습니다. 거주⋅이전의 자유는 자기가
원하는 곳에 주소를 두고 체류할 수 있는 자유, 의사에 반하여 주거지를 옮기지 않을 자유를 의미합니다.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를 이유로 가족이나 제3자의 선택에 의해 시설에서
살았고, 지역사회로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거주이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당한 것입니다.
시설에서 보호의 객체로 사는 삶은 헌법 제10조에서 정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기도 어렵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주도적으로 삶의 방식과 형태를 선택할 수 없는 삶은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탈시설과 자립의 권리는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제14조 “거주⋅이전의 자유”와 함께 제37조 제1항 “열거되지
아니한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도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이 이동 및 거주의 자유를 제한⋅박탈⋅구속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30조 제3항).
국제법적으로도 탈시설은 하나의 권리로 인정됩니다. 세계인권선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누구나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인격을 자유롭고 온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세계인권선언 제29조 제1항). 이동의 자유와 거주지 선택의 자유권(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제12조)과 적절한 의복, 식량 및 주거를 포함한 적절한 생활수준유지권(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1조) 및 기본적인 의사소통 권리는 자립생활과 지역사회통합의 권리에 근간을 이룹니다.
장애인권리협약(CRPD)은
장애인이 차별당하지 않고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는 것이 복지나 시혜가 아니라 장애인의 권리라는 것을 선언하는 국제법입니다. 이 협약에서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장애인이 거주지와 동거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특정한 주거형태를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활동보조를 포함하여 가정 내 지원서비스, 주거 지원서비스 등에 접근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제19조). 누구도 시설이라는
특정한 주거형태에서 살라고 강요할 수 없고,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우리나라의 상황
가.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상황
장애인권리협약이 잘 이행되도록 하기 위해서 국제연합(UN)에는 장애인권리위원회라는 기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한 나라들이 위 협약을 얼마나 잘 준수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권고하는 역할을 합니다. 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7년 9월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이 처한 상황을 점검한 다음 아래와
같이 권고를 하였습니다.
“탈시설화 전략이
효율적이지 않고, 장애인의 지역사회 동참을 위한 조치와 정책이 부족하므로, 효과적인 탈시설화 전략을 개발하고 활동보조 서비스를 포함한 지원 서비스를 대폭 확대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8년
3월 우리나라 정부에게 위 권고 이후 효과적인 탈시설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탈
시설-자립지원을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2018년~2022년)을
수립하면서 ‘탈 시설 및 주거지원 강화’를 22개 중점과제 중 하나로 설정하여 보건복지부 차원에서 연구용역 실시 및 ‘장애인
거주시설 탈시설-자립추진 민관협의체’를 발족하여 탈시설-자립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고, “2019년부터 장애인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 선도 사업을 실시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장애계에서는 아래와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① 탈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법적 근거조차 마련하고 있지 않은 점
② 거주시설 소규모화, 거주시설 유형 다양화, 자립생활주택 지원만으로는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탈시설 정책이라고 할 수 없는 점
③
커뮤니티케어 중 보건의료 서비스로 실행될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의 경우 시범사업에서 여러 문제가 나타난 점
④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 위한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에 장애인의 욕구와 필요를 반영하지 못한 점.
⑤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의 신청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점
⑥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가 부족한 점
⑦
부양의무제로 인해 장애인이 소득이나 급여산정에 있어서 불이익을 입고 있는 점
나. 중증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문제
앞서 탈시설 권리에는 거주지와 동거인을 포함하여 삶의 형태를
선택할 권리가 포함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다 보면, 의사표현이 어렵고 다른 사람이 그의 의사를 파악하기 어려운 중증 발달장애인은 탈시설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중증 발달장애인이 시설을 나오고 싶은 지, 자립생활을
원하는 지 제3자로서는 판단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적 자립”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증 발달장애인은
자기결정권에 기반을 둔 자립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탈시설을 가로막는 생각이 될 수 있습니다. 자립생활은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판단하면 안 되고, 장애인이
자신의 생활방식과 일상생활 활동에 대한 선택과 통제의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시설에
살고 있는 중증발달장애인은 대부분 최초로 시설에 들어갈 때 본인이 입소를 결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그의 권리를 침해당한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시설에서 나올 지 여부는 “그의 선택인지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탈시설을 막는다면 권리 침해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4. 권리가 실현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가. 정부의 노력
탈시설 권리가 실현되려면 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 정도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배정된 예산이 너무나 적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커뮤니티케어는 지역사회에
나와 있는 사람들(노인이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그 지역의
실정과 대상자의 욕구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이므로 탈시설에 맞춘 정책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현재 탈시설에 맞추어 추진하는 정책은 시설의 소규모화
정책입니다. 하지만 시설을 쪼개어도, 형태를 바꾸어도 여전히
시설입니다. 여전히 대형시설들은 존재하고, 크고 작은 시설에서
인권침해는 계속 문제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탈시설-자립지원”을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한만큼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장애인 거주시설을 없애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맞추어 보조금을 줄여 나가고 탈시설 지원정책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물론 거주시설 운영자, 소속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정책이겠지만, 거주시설이 처음부터 장애인의 삶을 위해서 만들어졌던 것인 만큼, 장애인의 권리와 욕구를 중심에 두고 정책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거주시설을
바로 없애는 것이 아니므로 기간 안에 기존 거주시설에 대한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우선 인권침해가
발생한 시설은 즉각적으로 탈시설 정책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주시설을 다른 용도로 전환하고 근로자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햐는 방안을 마련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존에 거주를 위해 존재하던 시설이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잘 정착하고 통합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로 역할을 바꾸는 것입니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 입장에서는 탈시설이 무엇인지, 탈시설 이후의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기 어려운 상황일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장애인에게 탈시설하겠냐고 물었을 때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탈시설이
가능한 장애인에게는 그 장애인에게 맞는 지원계획이 수립되고 적극적인 지원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전문적으로 담당할 센터가 지역마다 설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탈시설 전반을 계획하고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을
관리하는 “탈시설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의 탈시설은 복지 차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주거, 고용, 활동지원, 소득
등 다양한 문제가 포함되어 있으며, 시설 운영자, 근로자의
이해관계까지 고려되어야 하므로, 보건복지부 산하에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국무총리 산하에 두고 관련 부처가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합니다.
탈시설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법률가들과 장애단체 활동가들이
모여서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법안은 탈시설 지원과 인권침해 시설에 대한
조사 및 제재를 중요한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탈시설이 무엇인지, 장애인에게
어떠한 권리가 있고, 탈시설의 원칙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이 필요한 지, 인권침해 시설에 대해서 어떻게 조사하고 어떤 제재를 할 지, 그 과정에서 거주 장애인은 어떻게 보호할 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법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탈시설이 버베 근거하여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 우리의 노력
이러한 법안이 만들어져도 국회에 발의되고, 통과되기까지 긴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보건복지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하고, 담당행정기관인 보건복지부와
예산을 결정하는 기획재정부를 설득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들부터 힘을 모아주어야 합니다. 당사자들도 외면하는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시설에 살고 있는 3만여 명의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2010년 꽃동네에
살던 두 명의 장애인이 자신의 탈시설 권리를 찾고자 제기했던 소송이 우리나라에서 탈시설 운동의 물꼬를 텄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을 통해, 시설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주변사람들에게
미안해하고, 시설로 돌아가는 악몽을 꾸는 우리 의뢰인들의 삶이 나아지길, 그리고 같은 상황에 놓인 장애인들의 삶이 바뀌길 간절히 원합니다.
5. 글을 마치며
요즈음 코로나19로
인해서 생활의 불편이 많습니다. 탈시설한 장애인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판매하는 약국의 턱을 넘지 못하는 어려움, 활동지원이 끊길
위험, 병원에 제 때 가기 어려운 상황 등. 이런 상황에서
비장애인들은 ‘그렇게 어려우면 잠시 시설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다는 생각일 수 있지만, 그러한
생각이 차별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거주시설이 사회복지서비스의 최후의 보루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탈시설 법안이 꼭 통과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힘을 모아주세요. 다
함께 살기 위한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