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고 있는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가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궁금증은 이내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의 맛을 음미하는 것에 밀려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러다 함께 일을 하던 동료가 한승태 작가의 ‘고기로 태어나서’를 추천해주어 우연치 않게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몹시 불편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면서 건네준 이 책 속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식용 동물들의 삶이 담겨 있었다.
작가는 고기를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이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 알기 위해 산란계 농장, 부화장, 육계 농장, 종돈장, 자돈 농장, 비육 농장, 개 농장 등을 직접 찾아가서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했다. 식용 동물의 삶은 크게 사육, 수송, 도살 등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작가는 이 과정 중 사육, 즉 동물이 태어나서 도축장으로 보내지기 직전까지의 과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 기록은 고기를 자주 먹는 나로서는 몹시 불편했다. 작은 배터리 케이지에서 닭을 낳는 산란계는 스트레스로 자신의 몸이나 계란을 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리의 일부가 잘린다. 빨리 먹고 빨리 살을 찌워야 하는 자돈의 경우에는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한 돼지의 이마를 망치나 파이프로 내리쳐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하여 농장의 공간과 사료 비용을 절약한다. 개의 경우에도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배급받으며 위생적이지 못한 사육 환경 속에서 옴이나 진드기, 각종 피부병에 시달리며 도축이 될 때만을 기다리는 삶을 산다. 작가는 이를 시간과 공간의 감옥이라고 표현한다. 다만 작가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채식을 해야 한다’와 같은 선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담담하게 현상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보고 들은 경험을 독자에게 전달할 뿐이다.
책은 코르네이 섬에 있는 붉은 돌담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코르네이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부족에게서 자신들의 관습이나 믿음과 다른 점을 발견할 때마다 부정한 기운을 막아준다는 붉은빛을 띤 돌을 마을 주변을 따라 던져두었고 이내 그 담은 사람 키를 훌쩍 넘을 만큼 높아졌다고 한다. 이 돌담의 돌은 벽 너머의 이방인에게서 벽 안의 사람과 같은 점을 발견하면 하나씩 뺄 수 있다는 규칙이 있는데, 처음에는 돌담 너머 이방인들을 배척했던 코르네이 부족의 사람들은 벽 너머를 엿보다가 벽 너머의 사람들도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발견하고 돌을 하나씩 빼냈고 이내 돌담의 높이는 낮아지고 또 낮아졌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이 식용 동물들을 기르는 농장에서 붉은 돌담 너머에 인간과 전혀 다르다고 여겨져서 찢기고 죽어가는 동물들을 엿보고, 그 엿보기 과정에서 인간과 동물의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불은 돌담의 돌을 조금은 빼게 될 수 있게 된 것 같다.
동물은 인간과 분명 다르다. 이 책은 절대 동물이 인간과 동일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동물도 생명이기에, 동물도 고통과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인간과 분명 닮은 점이 있다는 점을 식용 동물 농장에서의 체험기를 통해 담담하게 들려준다.
지금껏 우리 사회는 ‘동물은 사람과 다르다’라는 논리 앞에 동물에 대한 학대나 잔인한 도축 방법, 비윤리적인 사육 과정이 옹호되거나 혹은 지탄받지 않고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나는 붉은 돌담 너머를 잠시 엿볼 수 있었고, 동물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아주 조금은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완벽하게 내 마음 속의 붉은 돌담을 무너뜨리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이 책을 통해 붉은 돌 하나 정도는 뺄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동물과 인간 사이에 놓여 있는 자기 마음 속의 붉은 돌담 너머를 엿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한승태 작가의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어보면 어떨까.
칼럼 원문 : 녹색법률센터
담당자 : 김성우 변호사(02-6200-1918)
두루는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주시는 여러분들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우리 사회에 더 많은 변화를 이끌기 위해 변호사들을 후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