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최악의 세대가 되지 않고 싶은 몸부림
저는 영화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영화의 한 장면이나 대사로부터 삶에 있어서 중요한 배움을 얻기도 합니다. 문득 스쳐가는 누군가의 기발한 발상이 저에게 감명을 주는 순간이죠. 최근에 시청한 어떤 영화에서는 시간에 대한 독특한 발상이 돋보이는데, 그것을 아주 간략히 요약하자면, ‘미래’가 ‘현재’에 대해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발상의 역설이 주는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영화에는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왜 우리를 공격하느냐는 물음에 미래세대는 ‘땅이 황폐화되고 물이 말랐으니까, 해수면이 오르고 빙하가 녹았으니까’라고 답합니다. 우리가 지금의 우리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에게 우리는 어떤 존재로 인식될까요? 폐기물은 쌓여가고 열에너지의 정상적인 순환은 꼬여버리는데, 어쩌면 미래의 지구는 우리가 아는 그런 모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억년의 시간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온 지구를 한순간에 바꿔버리고 있는 우리는 최악의 세대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환경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을 출발한 지 대략 4년이 흘렀습니다. 누군가 왜 환경을 위해 공부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서, 그래서 언젠가 미래에게 복수를 당할, 지우고 싶은 현재가 되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할까 합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환경 또한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의 실천이 필요하고, 두루에서의 2주는 새로운 실천의 시작이었습니다.
2. 2주 간의 커다란 배움, 작은 소회
처음 실무수습 합격 소식을 접했을 때, 너무나 설레고 기뻤습니다. 특히 이번 동계 실무수습에 환경 분야가 신설되는 것으로 알아서 더욱 큰 기대를 안고 두루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변호사님들과 시보님들을 뵈었고 환경뿐 아닌 다른 주요 공익인권 분야의 이슈와 실천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2주 동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공익법무 전반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각각의 분야에 대한 특강이 있었습니다. 국제인권 분야에서는 국제공한 난민의 인권과 처우 문제에 대해서, 장애인권 분야에서는 ‘탈시설 권리’나 ‘위험할 권리’와 같은 이슈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고 아동ㆍ청소년 분야에서는 청소년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공간에 대해서,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는 마을기업과 같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대안경제에 대해서, 그리고 환경분야에서는 기후변화 이슈를 중심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들어서는, 임성택 변호사님의 임팩트 소송 특강이 많은 생각을 남긴 것 같습니다. 임성택 변호사님의 특강은 그 자체만으로도 저로 하여금 공익변호사로서 가져야 할 마음과 전문성에 대해서 깊은 고찰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회복지기관들을 대상으로 ‘탈시설 소송’을 수행하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임성택 변호사님은 평소의 습관적 사고나 시선으로는 쉽게 떠올리기 힘든 ‘복지시설의 공간적 권력’에 대한 지적과 함께 탈시설 권리 또는 위험할 권리의 인권적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수많은 신체적 핸디캡을 가진 사람들이 복지적 공간의 규율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지 못한다는 점이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습니다. 저로서는 언제나 그들을 보호해야하고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만 보았고 그러한 ‘대상화’와 ‘객체화’의 시선 속에서 가장 중요한 자유의 멸각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저는 시설에서 나와 염색을 시도한 당사자의 모습을 보고 입을 벌린 채 생각을 쉽게 이어나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무지’라고 말합니다. 글쎄요, 그렇다고 치면 저는 상당한 무지들을 안고 살아가는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바꾸어나가고 있는 와중에, 저희 가족 역시도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따라 영업제한의 제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우나는 여전히 운영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보고 ‘사우나야말로 정말 위험한 곳일텐데 어째서 영업에 제한을 두지 않는 거지? 정 목욕이 하고 싶다면 집에서 욕조에 물 받아놓고 씻으면 되잖아. 사우나를 그렇게 좋아하는 나도 1년을 참고 있는데 말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억울한 마음에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고 제 철없는 투정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도 저와 같은 생각으로 같은 문제에 대해 공공기관에 민원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겨울철에 온수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사우나가 아니면 목욕을 하기도 힘든 취약계층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우나를 섣불리 폐쇄할 수 없다.’라는 것이 공공기관의 답변이었습니다. 공익적 목적을 가지고 공익변호사를 꿈꾸며 공익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아왔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아직까지 저는 제 기준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어딘가에 있을 고통 받는 사람들의 시선은 생각도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를 보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시선을 제공합니다. 단순히 머그잔을 사용하고 플라스틱 제품을 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환경이 조금씩 파괴될수록 그것은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고 가장 먼저 그 부메랑에 다칠 사람들은 사회취약계층입니다. 누군가가 충분한 자본을 바탕으로 값비싼 화학제품을 사용하고, 고도의 지식을 바탕으로 훌륭한 영양 상태를 유지하며 청결한 위생상태, 안전한 공간, 정밀한 생산품의 낮은 위험성을 누리는 동안 다른 이면의 누군가는 외부적 부작용을 고스란히 껴안게 됩니다. ‘우리의 환경은 아직 살만하다’라는 안일한 생각은 협소한 시각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세상을 더 알아야겠습니다. 안다고 자부하지도 말고 알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제 작은 소회는 바로 그것입니다. 시선을 넓히고 숨겨진 권리를 찾자. 문제는 생각 이상으로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바로 위에서 문을 닫지 못하는 사우나를 생각해보면, 사회취약계층이 불가피하게 사우나를 가야한다면, 사우나는 여전히 감염의 위험이 높은 곳인데 그들의 ‘거리 둘 권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변호사의 일이란 그런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2주였습니다.
3. 과제 활동
첫 1주차에는 ‘배드파더스’ 웹사이트 운영자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 사건에 대한 소장을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소장을 작성하면서 송무를 직접 체험해보고 저만의 글로써 소장을 완성해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저희는 변호인으로서, 헌법재판소 결정을 찾으며 합헌적 법률해석의 법리와 표현의 자유와 같은 헌법적 기본권의 법리를 활용해야했습니다. 그리고 명예훼손죄 사건에 관한 여러 형사소송판례를 비교하며 ‘비방할 목적’을 판단할 여러 기준들을 도출하고 각자의 독창적인 논리로 기준들을 정립하여 논리를 구성해나갔습니다. 저희에게 주어진 사안과 이미 판결이 확정된 사안을 비교해나가며 사안 간의 공통점 속에서 판단의 기준을 찾는 일이 상당히 재밌고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저희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수험적으로 배우는 내용 이상으로 과감한 논리를 펼쳐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2주차에는 영역별로 과제를 수행했습니다. 저는 ‘영풍 석포제련소의 오염물질 배출 관련 정보에 대한 경상북도지사 등 행정청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경상북도지사의 거부처분에 대한 취소의 소’의 소장을 작성했습니다.
과제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아연제련소의 환경적 위험성을 판단할 정보의 공개를 거부한 지방자치단체의 처분을 취소할 것을 제기하는 행정소송 작성 과제였습니다. 경상북도 봉화군에는 영풍 석포제련소라고 하는 아연제련소가 있는데, 아연제련소의 경우, 아연 제련 공정 중간에서 이산화황이나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 물질이 배출됩니다. 이산화황이나 카드뮴이 대기나 물을 통해 인체에 노출되면 ‘이타이이타이병’과 같은 특이성 질환을 포함한 심혈관계ㆍ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게 됩니다. 저의 과제는 이러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으로부터 정보공개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환경분야에서 정보공개청구는 ‘무기의 평등성’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여기서 무기란 소송에서 당사자가 상대방을 향해 제기할 수 있는 공격방어방법을 의미합니다. 환경소송에서 많은 경우, 원고는 환경오염의 피해자가, 피고는 환경오염을 일으킨 가해자가 해당되는데 이러한 구조는 실제 소비자와 기업 간의 대립 구도로 나타납니다. 일반 시민과 기업. 소비자와 거대 자본 간의 불균형과 격차는 직관적으로도 충분히 예측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민법 제750조에 따른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불법행위와 피해자의 손해 간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하는데 고도의 공학적인 정보나 지식에 접근하기 어려운 일반 소비자로서는 그러한 증명이 어려워 무기의 평등성을 담보받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기업 측에서 영업상 비밀에 해당함을 들어 정보를 숨기고자 한다면 더더욱 어렵습니다. 이것이 제가 맡은 과제의 주제의식입니다.
1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판례를 찾고 과학 논문을 읽었습니다. 복잡한 지식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지만 무언가 끓어오르는 힘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는 시민의 무기라는 생각과 함께 나름의 논리를 전개해나갔고 제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소장을 쓴 것 같았습니다.
4. 나가며: 우주선 경제를 생각하며
실무수습 중간에 참여할 수 있었던 조천호 박사님의 기후변화 특강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성장을 멈추고, 거대한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생태경제학자들은 현재의 우리세대의 경제를 우주선 경제에 비유합니다. 하나의 폐쇄경제시스템으로서 우주선과 같은 환경, 다시 말해 한정된 자원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우주선 속 우주인의 삶과 같은 것이지요. 우주인이 드넓은 초원에 사는 자유인과 같이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식량이 금방 바닥나 큰일이 날겁니다.
우주선 경제에 필요한 것은 규칙입니다. 우주인은 한두 달의 우주체류기간 동안 하루에 얼마만큼의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생존과 직결된 사안이므로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실제 우리의 세상 역시 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익변호사라면 우주선 경제의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할 것 같습니다. 실제 세상에서 계획이란 곧 우리가 공부하는 법률이니까요.
두루는 저에게 우주선 내에서 어떤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었습니다. 2주 간의 시간 동안 스스로를 점검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공익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넓은 시선과 전문적인 지식으로 싸워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