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평생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할 일에 치여 매일의 일상 속에서 고단하더라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보며 내일의 원동력을 얻어가는 삶이야말로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문언상으로만 보았던 ‘직업을 갖는 이유’ 에 대한 명확한 설명일 것입니다. 짧은 찰나에 불과한 현재까지의 인생 궤적 역시 이러한 욕구 하에 이루어져 왔습니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자 마음먹었던 순간이 그러했고, 법을 통해 제도화된 세상의 작동 원리를 가늠해보겠다 결심한 순간 역시 같았습니다. 결국 인생에 다가왔던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제 판단 기준은 ‘선택에 따른 과정에 가슴 뛰는 열정으로 임할 수 있겠는가’의 여부였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사단법인 두루의 하계 실무수습 프로그램은 지원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순간부터 마지막 출근날까지, 지금껏 가져왔던 선택의 준거가 틀리지 않았음을 실감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부족하나마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아동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고, 공익변호사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끊임없는 궁금증을 지닌 제게, 두루에서의 하루하루는 그 자체로서 가슴 뛰는 설렘이었습니다.
영역별 소개 및 강연: 새로운 분야의 신선한 자극
두루에서의 실무수습 과정은 크게 자율적인 과제 수행과, 영역별 소개 및 특강 시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중, 매일 한 개에서 두 개 정도 진행되었던 영역별 소개와 특강의 내용은, 그간 한 번도 고민해보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자극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영역별 소개는 두루의 주된 업무 분야인 ‘아동’, ‘사회적 경제’, ‘노동’, ‘장애’, ‘환경’, ‘국제’ 등에 대한 각각의 업무 범위와 방법, 관련 이슈, 실제 사건 수행 내용 등을 알아보는 과정이었습니다. 원고가 사건을 의뢰하면 그것을 대리하는 것으로만 단편적으로 변호사 업무를 이해하고 있던 이전까지의 제게, 각각의 시간들은 (공익)변호사의 새로운 활동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습니다.
특히 평소에 그 존재만을 알고 있었을 뿐, 어떠한 형태로 운영되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지했던 ‘협동조합’의 개념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사회적 경제’ 영역 시간은 제게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현존하는 기업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기업 자체의 법적 형태를 고민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갖도록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속해 있는 영역이었던 아동 분야 시간에는, ‘소년사법’ · ‘장애아동의 놀 권리’ 등 그간 특정 이슈들이 문제화되고 있다는 사실만을 파악하고 있던 해당 영역에서의 앎의 수준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드는 계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특강 프로그램 역시 새로운 내용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강연이 저마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임성택 이사님께서 소개해주신 ‘Impact litigation’의 개념은 전략적 기획소송의 가능성을 공익 분야 전반에 접목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1·2차 과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이외의 시간에는 인턴실에서 주별 과제를 수행하는 일정으로 실무수슴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첫째 주에는 장애인권 분야와 관련하여, 두루에서 현재 수행 중인 장애인활동법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를 작성하였고, 둘째 주에는 영역별 과제로서 디지털 아동 성착취 문제의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하는 과제를 부여받았습니다.
두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을 두루의 변호사님들께서는 해당 과제를 ‘업무’라고 지칭해 주시고, 인턴 기간 동안 저희를 ‘시보’라고 불러 주시지만, 그러한 명명이 무안할 정도로 양자를 해내는 시간은 제게 있어 철저히 ‘학습’의 과정이었습니다. 무릇 업무라면 그것이 소속 기관의 일 처리에 도움이 되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저는 두루 변호사님들의 애정 어린 지도 아래에서, 과제의 주제 및 내용과 관련된 많은 것들을 배우기만 한 듯합니다.
특히, 과제 제출 후에 변호사님들께서 해주신 강평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비록 코로나 상황 탓에 1주차 개별강평은 전화상으로, 2주차 강평은 Zoom을 통해 진행되었으나, 소통의 수단은 전혀 문제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제의 내용과 형식, 문체 등 모든 것을 아울러 좋은 의견을 주신 탓에, 앞으로 실무에서 법률문서를 어떠한 방식으로 작성하게 될 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두 가지의 과제를 수행하는 ‘실무수습’ 기간 동안 역설적으로 ‘이론’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기도 했습니다. 공익변호사의 열정을 실제적인 제도 개선이나 변화로 현출시키기 위해서는, 현재 존재하는 여타의 논리를 흔들 수 있는 설득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굳건히 작동하고 있는 이론과 판례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 새로운 것을 주장할 수는 없을 터입니다. 그렇기에, 과제와 함께했던 2주간의 과정 중 그 어떤 변호사님들께서도 ‘열심히 공부하라’라는 압박을 주지 않으셨지만, 스스로가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자발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나가며
로스쿨에서 공부를 이어간 시간이 1년 반이 되어갈 때까지도, 법률가가 사회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변혁하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사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을 조절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법조인이란 공동체라는 기계의 톱니바퀴 자체를 고치기보다는 윤활유를 뿌리는 존재와 비슷하다고 느껴 왔습니다.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의 갈등 해결을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곁에서 지켜본 두루의 변호사님들께서는 매일같이 새로운 일들을 마주하며, 변화를 만들어내고 계셨습니다. 현재 존재하는 법령이 문제라면 그 법령을 바꿔보기 위해 힘쓰고, 공동체 내부의 모순점이 생각되면 기획소송을 통해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면서, 법률가 역시 사회 구조의 톱니바퀴를 바꿀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아가, 공익변호사로서의 삶 자체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점 역시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변호사로서 공익적인 일들을 해나가며 살고 싶다는 소망만 지닌 채 그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명확히 알지 못했던 제게, 곁에서 일하시던 변호사님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서 닦여있는 길이자 배움의 거울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학기가 시작되고, 학교로 돌아갑니다. 비록 두 달간의 방학이었으나, 두루에서의 실무수습 이전과 이후의 제 모습은 확연히 다를 것이라 여겨집니다. 공부를 하는 이유와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하여 그 어떤 때보다 더욱 명확한 생각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례 없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신 두루 변호사님들과, 함께 공동의 문제를 고민해준 동기 시보님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