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가. 지원동기
진실 :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오고 해가 넘어가는 것을 앞두면서, '이렇게 두 해를 더 넘긴다면 변호사가 되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떠한 변호사가 되어 있을지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즈음, 학교 홈페이지에서 사단법인 두루의 동계 실무수습 공고를 보았습니다.
두루 실무수습에 지원하면서, 두루 활동의 큰 갈래인 '장애인권', '아동·청소년인권', '사회적경제', '국제인권', '환경' 중 어느 분야에 지원할지, 혹은 어떤 우선순위로 지원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대학생 때 장애 청소년과 함께하는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고, 장애인 탈시설 운동이나 아동 인권, 이주민 인권, 난민 인권 이슈 등에 관해서는 특강을 들은 적이 있어, 장애인권과 아동·청소년인권, 국제인권 분야에는 어느정도 관심과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단위가 개인이나 사회 혹은 국가가 아니라 행성으로 확대되는 환경 분야나, 개념조차 생소했던 사회적경제는 저에겐 낯선 영역이었습니다.
저는 제일 모르는 분야를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사회적경제 영역에 지원했습니다.
준혁 : “사회적 경제”의 개념은 아직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매우 모호한 개념입니다. 학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며 이와 관련한 내용을 매우 짧게 배웠던 적은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사회적 경제를 기업의 이익과 공익의 회색지대에 놓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듯하나, 이 개념이 전자에 가까운 것인지(기업의 사회적 책임) 아니면 후자에 가까운 것인지(협동조합, 소셜벤처), 둘 모두를 아우르기 위해 창안된 개념인지는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사단법인 두루에서는 이에 대한 나름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지원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공익법의 다른 분야(국제인권, 장애인권, 아동청소년인권, 환경)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두루의 실무수습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나. 두루 실무수습 개관
진실 : 두루의 실무수습은 2주 동안 진행됐습니다. 첫째 주에는 영역에 상관없이 공통과제가 부여되었고, 5개 영역의 업무를 각각 소개하는 강의가 있었습니다. 그 주 금요일에는 ZOOM 상에서 온라인 회식을 했습니다. 둘째 주에는 각 영역 별 개별과제를 수행했고, 두루의 임성택 이사님, 이한재 변호사님과 외부 인사 분들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또한, 희망하는 사람은 공식 일정 외에도 실무수습 기간 중 진행되는 외부 일정에 두루 변호사님과 함께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준혁 : 오미크론이 확산세에 접어드는 엄중한 상황에서 실무수습이 진행되었습니다. 마침 지평과 두루가 서대문을 떠나 서울역으로 이사를 가는 기간이기도 해서 오프라인으로 실무수습을 진행하되 별도 일정이 없는 날에는 재택근무를 통해 각자 과제를 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1주차는 공통과제 수행과 영역별 소개, 2주차는 두루에서 준비해주신 각종 특강과 영역별 과제를 수행하는 것으로 실무수습이 이루어졌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하겠습니다.
2. 공통일정: 공통과제, 특강, 외부일정(재판 방청 등)
진실 : 모든 영역의 시보님들이 함께하는 공통 일정은 대개 실무수습 첫 주에 진행되었습니다. 첫째 주에는 <시청각장애인 영화관람권 보장청구 소송>의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는 과제가 부여되었습니다. 상고이유서를 작성 하기 위해 항소심 판결문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법원의 결정에서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주된 쟁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법원의 결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 노력한 것, 변호해야 할 입장이 정해져 있는 것, 육법 외에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살펴본 것, 차별구제청구소송이라는 생소한 소송 유형을 접한 것 등은 학교에서 법을 배우던 방식과는 달랐습니다. 그리고 한 주의 끝에는 과제를 내어 주신 이주언 변호사님의 상세하고 친절한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차별구제청구소송의 상고이유서를 쓰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다른 차별구제청구소송의 선고를 방청하는 경험 역시 뜻깊었습니다. 원고측의 손을 들어준 소송 결과에, 변호사님들께서는 남은 실무수습 기간 내내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올 줄 몰랐다"고 놀라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예상되는 결과가 어떻든 옳은 일을 하려고 하시는 공익 변호사님들이 정말 멋지시다고 생각했습니다. 방청 이후에 기자회견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날의 선고 결과가 있기까지 당사자분, 활동가님들, 변호사님들 등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을 텐데, 그 시간이 보답 받는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또한, 두루 변호사님들께서 주중 3일에 걸쳐 모든 업무 영역을 소개해주셨습니다. 한 번의 실무수습으로 공익 변호사의 여러 활동 영역을 엿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로 개별 영역 과제를 수행했던 두 번째 주에도 공통 일정으로 여러 특강이 있었습니다. 사회성과 연계채권에 대해 강연해주신 팬임팩트 코리아의 곽제훈 대표님, 임팩트 소송을 알려주신 임성택 이사님,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주신 윤세종 변호사님, 그리고 공익변호사의 진로에 관해 설명해주신 이한재 변호사님, 모든 특강이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눈을 트이게 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시는 분들을 뵈면서, 제가 어느샌가부터 정해져 있는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하려고, 남들을 이 세상에 끼워 맞추려고 노력해왔다는 것을 깨닫고 반성했습니다. 100년 전, 혹은 50년 전의 사회가 지금과 꼭 같지 않았듯, 지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도 끈질기게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파내듯, 무수한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세상에 그저 순응하기보다 더 바람직한 세상을 꿈꾸고 지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준혁 : 1주차의 공통 과제는 지평과 두루가 시청각장애인을 대리하여 영화상영사를 상대로 제기한 영화관람권 보장청구 소송의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제를 출제하신 변호사님께서 시보들이 실제로 변호사의 업무를 한다고 느낄 수 있도록 대부분의 소송기록을 보여주셨고, 이에 따라 짧은 시간 내에 원심 판결을 요약하고 문제되는 쟁점을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하는 변호사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이후 이루어진 개별 강평에서도 변호사님께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응원해 주셔서 소송서면 작성에 있어 부족한 부분을 잘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1주차에는 국제, 사회적 경제, 아동청소년, 장애, 환경 등의 개별 영역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고, 이에 따라 공익변호사의 역할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장애 영역의 소개는 지평과 두루가 장애인을 대리하여 편의점 운영사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차별구제 등 청구소송에서 원고일부승소를 선고받는 순간과 기자회견에 함께하는 것으로 갈음하였는데, 현장에서 공익변호사가 하는 일을 보다 가까이 접했던 기억은 오래도록 잊기 힘들 것 같습니다. 또한, 기자회견이 끝나고 장애인권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변호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였는데, 장애인권 영역에서 케이스를 발굴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일 뿐만 아니라 “장애”라는 당사자성을 결여한 비장애인이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강한 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 주셔서 좋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영역별 소개 외에도 사회성과연계채권(SIB), 임성택 이사님의 임팩트 소송 특강, 기후변화특강, 공익변호사 진로 소개 등 다양한 특강을 통해 공익법 전반의 영역이 얼마나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3. 사회적경제영역 개별일정: 개별과제(1), (2), 외부일정(보틀앤스쿱 방문)
진실 : 둘째 주부터는 영역에 따라 다른 과제를 부여 받고, 본인 영역의 변호사님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사회적경제 영역의 개별 과제는 <제로웨이스트 매장 개설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자문 의견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공통과제로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는 일도 마찬가지였으나, 자문 의견서를 작성하는 것도 처음 하는 일이라 낯설었습니다. 또한, 제로웨이스트 매장에 명확히 대응하는 법령이 없기 때문에 여러 법령을 샅샅이 뒤지면서 산재한 관련 규제 내용과 인허가 절차를 알아내야 했습니다. 고객이 요청한 자문에 명확한 답이 있지 않아서 어려웠지만, 고객의 문제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서 현재 상황과 관련 법령에 기반한 의견서를 작성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사회적경제 영역 변호사님들께서는 이 과제의 주인공인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방문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과제에서 제시된 문제가 해결된 결과를 당해 매장을 통해 확인하면서, 비록 저희의 의견서가 만들어낸 결과는 아니지만, 변호사에게는 세상과 법 사이를 조율하는 힘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추가로 <비영리법인의 정관 변경에 관한 법률 자문 검토> 과제가 부여되었습니다. 이 과제를 수행하면서 정관 변경에 관한 민법 내용과 공증인법 등을 찾아보았고 '의사록 인증 제외대상 법인 등록' 제도 등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추가 과제의 수행 여부는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두 가지 자문 의견서에 대해서 이선민 변호사님과 김성우 변호사님께서 상세한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잘 한 점과 개선해야 할 점을 세세하게 짚어 주셨고, 이 과제들을 통해서 저희가 배웠으면 했던 것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시보의 성장을 세심하게 염두한 과제와 피드백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준혁 : 기존에는 사회적 영역의 개별과제가 1개였으나 사회적 경제 담당 변호사님께서 사회적 경제영역의 시보들이 실무를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별도의 과제를 출제해주셨습니다. 비법인사단이 업종을 추가하는 정관변경을 위한 대면총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대면총회 가능 여부, 공증 요부 등의 질의사항에 답변하는 과제였습니다. 후술할 본 과제에 조금 더 시간을 투입하고 싶어서 꼼꼼히 살피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변호사님께서 부족한 부분과 잘한 부분을 나누어 설명해 주셔서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시간이 없는 경우 검토만 해도 되는 과제였습니다).
본과제는 의뢰인이 제로웨이스트·리필스테이션 형태의 매장을 창업함에 있어, ① 의뢰인이 현재 구상하는 매장이 가능하려면 어떠한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② 의뢰인이 판매하려는 여러 제품들이 제로웨이스트 또는 리필스테이션 형태로 판매가 가능한지 ③ 만약 판매 불가능한 제품이 있다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지 등 사회적 기업의 창업과 운영에 있어 생길 수 있는 법적 쟁점을 폭넓게 검토하는 자문의견서를 작성하는 과제였습니다.
판례도 존재하지 않고 고객이 영위하고자 하는 사업을 규율하는 관련 법제도 미비한 상태라 의견서를 어떻게 작성해야할지 막막했으나, 변호사님께서 문제될 수 있는 쟁점들을 대부분 소개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유사한 형태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함께 방문하여 추가로 생각해볼 만한 쟁점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본과제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본과제에 대해서도 상세한 강평이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자문 변호사가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소셜벤처와 관련해서 어떤 법적 문제가 있는지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4. 나가며(소감)
진실 : 멀지 않은 미래에 두루 실무수습을 돌이켜본다면, 이 순간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2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법학전문대학원에서의 1년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이번 겨울은 두루와 함께 누구보다 뜨겁게"라는 표어와 같이, 식어가던 가슴 속 열망도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두루와 올 겨울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두루에서 2주를 보내면서, 좋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체험했습니다. 두루 변호사님들께서는 바쁘신 와중에도 저희 시보들을 진심으로 대해 주셨고, 실무수습을 함께 한 시보님들께도 많이 배웠습니다. 좋은 분들과 함께한 덕분에 서로 평가하고 평가받지 않고, 오랜만에 저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서, 두루에서 배운 것을 잊지 않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번 실무수습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주신 두루 변호사님들께 감사드리며, 실무수습 중에 만나 뵈었던 모든 변호사님들과 시보님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준혁 : 두루에 지원했던 동기는 사회적 경제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함이었지만, 두루에서의 활동을 통해 다른 영역에 대한 관심을 환기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다양한 공익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는 두루의 변호사님들과 시보님들을 만난 것이 가장 뜻깊었습니다. 변호사님들께서 공익을 위해 열정적으로 달려나가시는 중에도 시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부족하거나 힘든 것은 없는지, 궁금한 것은 없는지 끊임없이 물어봐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알찬 실무수습 프로그램 덕분에 2주가 너무도 짧게 느껴졌고, 이 시기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뵐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두루의 변호사님들, 시보님들과 헤어져 각자의 삶의 궤적을 그려나가게 되었습니다만, 각자가 마음에 품고 있는 공익이라는 작은 불씨를 통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며 두루의 실무수습 지원을 고민하고 계신 분이라면, 주저 말고 지원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