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22년 2월, 두루에서의 2주는 매서운 겨울의 추위와 코로나19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따뜻했습니다. 장애 영역에 대한 열정으로 모인 저와 이해인 시보는 국제, 사회적경제, 아동ㆍ청소년, 환경 영역에서 모인 8명의 동기들과 함께 10배의 따뜻함을 나눴고, 변호사님들의 보살핌 아래 알차고 안전하게 실무수습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두루와 함께 했던 따뜻한 추억을 조금이나마 남겨보고자 몇 가지 주제를 뽑아 장애팀의 대표로 글을 적어봅니다.
두루를 만나기 전
1. 두루에 지원하게 된 동기
먼저, 두루의 장애 영역에서의 활동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제가 본 두루는 그 어떤 단체보다도 ‘장애’라는 담론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탈시설, 장애인차별금지법, 배리어 프리 같이 기존에 논의되던 권익 보호에 힘쓸 뿐만 아니라, 장애아동 교육, 코로나 상황에서의 장애인권 등 새로운 영역에서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도 힘쓰고 있었습니다. 두루의 활동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두루에 왔습니다.
또한, 두루 실무수습을 나갔다 온 지인들의 극찬이 있었습니다. 두루 실무수습 프로그램은 2015년부터 8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앞서 실무수습을 다녀온 사람들 중에 지인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두루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 좋았고 얻은 것도 많다고 말씀해줬습니다. 저도 두루에서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많은 걸 느끼고자 두루에 왔습니다.
두루에서의 1주차
두루에서의 실무수습은 2주간, 2022년 2월 7일(월)부터 2월 18일(금)까지 원칙적 대면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첫날에는 오리엔테이션과 영역별 변호사님들과 식사 시간을 가졌고, 공통과제를 받았습니다. 한편, 동기들 간에 2주를 어떻게 보낼지에 관한 내규 작성과 함께 하루가 마무리됐는데, 열띤 토론 끝에 모두가 만족할만한 내규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3일에 걸쳐 두루의 5개 팀인 국제팀, 사회적경제팀, 아동청소년팀, 장애팀, 환경팀의 주요 업무 소개가 있었고, 첫주차 마지막 날에는 공통과제에 대한 강평과 함께 영역별 과제가 부여됐습니다. 업무를 모두 마친 금요일 저녁에는 줌으로 하는 온라인 회식이 있었는데요. 명MC인 김성우 변호사님의 사회 아래 무척이나 알찬 회식이 진행됐습니다.
2. 내규 작성 후기
내규 작성은 제가 두루에서 얻어가고 싶었던 ‘사람’을 얻어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내규를 짜는 과정에서 치열하게 협의하고 의사를 결정했고, 이 과정에서 우리만의 의사소통 방법을 배웠습니다. 또한 코로나19 관련, 재택근무 관련 여러 쟁점이 있었지만, 어떤 호칭을 사용할지가 큰 쟁점이었는데요. 열띤 토론 끝에 ‘수평어’를 쓰기로 합의했습니다. 서로 친구처럼 이름을 부르지만, 형, 오빠, 누나, 언니 같은 표현이 빠진 ‘수평어’ 덕분에 나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편하게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러한 수평어가 없었다면 동기들과 가까워지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을 거 같습니다. 제가 두루에 왔던 절반의 목적은 ‘사람을 얻어가자’는 것이었는데, 함께한 동기들의 열정과 내규 덕에 목적을 이룬 것 같아 기쁩니다.
3. 장애 영역 업무소개 : ‘1층이 있는 삶’ 소송 1심 판결선고 및 기자회견 후기
두루가 하는 활동의 진수를 볼 수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장애 영역 업무소개로 두루가 진행하고 있는 ‘장애인 단체 측을 원고로 GS리테일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차별 구제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소위 ‘1층이 있는 삶’ 소송)의 판결선고를 함께 방청했는데요. 쉽게 인정받기 어려운 차별구제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거뒀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건물 경사로 설치에 예외를 둔 시행령은 무효이고, 소규모 편의점이나 음식점 등에 대해 장애인 이용을 돕는 시설 설치 의무에 예외를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취지입니다. 차별구제소송에서 승소를 거둔 사례가 많이 없었기에, 대체로 결과에 만족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이 법원 앞에서 주최한 기자회견을 통해 장애인분들과 변호사분들의 호소를 듣고,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현장경험이 어려울 수도 있었는데, 마침 법원 판결이 있던 터라 판결선고도 보고 기자회견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이면서도 활동가로서의 측면이 있는 공익변호사의 면모를 몸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4. 가장 인상 깊었던 다른 영역 업무소개 후기
환경 영역의 동물권 소개가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장애, 아동ㆍ청소년, 국제, 사회적경제 모두 인간의 권리와 그 기반이 중심이었다면, 환경 영역은 인간의 권리 바깥에 있는 것을 주로 다뤘기 때문입니다. 특히 석포제련소 사건 이후 소개된 동물권에 대한 소개에 진도군 진돗개 구조 사건, 군산 유기 동물 보호소 고발 사건, 모란시장 개고기 공급망 철폐사건 등을 다뤘는데요. 막연히 “환경을 지켜야지.”, “환경은 소중한거야.”와 같은 뻔한 당위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지에 대한 진지하고도 현실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5. 공통과제 후기 : 시ㆍ청각 장애인 영화관 소송 상고이유서 작성
공통과제는 원고인 시각ㆍ청각 장애인들이 피고인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를 대상으로 한 차별구제청구 소송의 2심 결과인 ‘△300석 이상의 좌석 수를 가진 상영관 △복합상영관 내 모든 상영관의 총 좌석 수가 300석이 넘는 경우 1개 이상의 상영관에서 총 상영 횟수의 3%에 해당하는 횟수로 개방형 또는 폐쇄형을 선택해 ‘배리어프리’(장애인의 사회생활을 막는 물리적·심리적 장애물 제거) 영화를 상영해야 한다‘고 판결에 대한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원심판결의 요지’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제3항의 ‘정당한 사유’ 해당 여부라는 쟁점에 대한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제1항 소정의 차별행위에 해당하지 않기에 영화관 측에게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할 의무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이 ‘정당한 사유’의 해당 여부는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과제를 통해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구제청구라는 새로운 영역의 소송을 접할 수 있어서 뜻깊었습니다. 비록 메인 쟁점인 ‘정당한 사유’를 검토하는 과정에 들어가야 할 ‘이중의 제한’에 대한 지적 등의 쟁점을 놓쳤지만, 강평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해 메꿀 수 있었습니다. 한편 지평과 두루가 실제로 제출한 상고이유서에서, 피고 측이 제기한 비용-편익 논리를 역이용한 부분이 겹치는 게 반갑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장애인 관객수를 위해 설치한 배리어프리 상영관이 장애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이나 노인 등 자막이나 화면해설을 필요하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는 논지 등이 그렇습니다.
‘장애인이 잘 사는 세상은 모두가 잘 사는 있는 세상’이라는 취지의 말에 적극 동의합니다. 이번 소송의 상고에서 좋은 결과가 나와 장애인이 영화관에서 비장애인 관객과 같이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랍니다.
두루에서의 2주차
2주 차에는 각자 영역별 과제를 열심히 수행하면서, ①팬임팩트 코리아 곽제훈 대표님의 사회성과연계채권 특강, ②이한재 변호사님의 공익변호사 진로 소개, ③임성택 이사님의 임팩트 소송 특강, ④이제는 기후솔루션 출신인 윤세종 변호사님의 ‘기후변화를 위해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 특강을 들었습니다. 특강과 함께, 공통과제에 대한 이주언 변호사님의 친절하고도 날카로운 개별강평 및 영역별 과제에 대한 강평이 마지막 날까지 있었습니다(장애 팀은 목요일에 모든 강평을 마쳤답니다~^^). 마지막 날에는 설문조사와 함께 수료식 및 수습 종료 간담회로 실무수습이 마무리됐습니다. 설문조사 당일 오리엔테이션과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자리에 앉았는데요. 2주 사이에 동기들끼리 매우 친해져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6. 개별과제 후기 : 소수장애(시청각중복장애, 신장장애, 호흡기장애, 장루장애)의 실태와 문제점, 대안제시
개별과제는 FGI(focus group interview)를 기반으로 소수장애인 분들이 장애인권리협약상 권리를 잘 보호받고 있는지 실태를 확인하고, 어떤 문제점이 있고 국내외 논문을 바탕으로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청각중복장애, 신장장애, 호흡기장애, 장루장애 등 소수장애 분야와 소수장애인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아가고 느낄 수 있는 뜻깊은 과제였습니다.
저는 신장장애와 호흡기장애 영역에 대한 조사를 했는데요. 신장장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투석환자뿐만 아니라, 소아장애, 그리고 간 이식 이후에도 관리가 필요한 장애인들의 삶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코로나19와 미세먼지 등 감염병과 기후 위기가 호흡기장애인들의 삶에 얼마나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 있을지 절감했습니다. 모자라지만 저의 조사와 연구가 신장장애인들이 장애인권리협약상의 권리와 더불어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을 누리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가장 인상 깊었던 특강 후기
임성택 이사님의 임팩트 소송 특강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변호사님의 특강을 들으며 변호사가 공익을 위해 어떻게 활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였습니다. 특히 탈시설, 영화관 소송, 시외이동권 소송, 1층이 있는 삶 소송 등 공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소송들이 어떻게 이뤄졌고, 어떤 논의와 고민을 거쳐 이뤄졌는지 들을 수 있었는데요. 단순히 개인들의 권리구제를 넘어 사회문제를 조금 더 깊이 있게 파고들어 광범위한 사람들이 공익적인 효과를 누리도록 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향후 공익변호사가 되거나, 그렇지 않고 일반적인 변호사가 되더라도 이러한 소송을 맡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8.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두루에서의 두주는 다가올 로스쿨 3학년 생활의 원동력이 될 거 같습니다. 인턴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쁨과 기대를 훨씬 넘는, 짧지만 정말 긴 2주였습니다. 위에 적은 글로도 다 담지 못할 만큼 많이 느끼고, 많이 배우고, 많이 얻어갑니다. 어떤 인연으로든, 그리고 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마치며
두루와 지평이 이사를 가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리고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부담이 적지 않으셨을 텐데도 대면으로 끝까지 챙겨주신 두루 변호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두루 실무수습을 참여한 경험이 있는 이한재 변호사님이 대면만이 줄 수 있는 현장감을 주고 싶어서 논의 끝에 대면으로 진행했다는 취지의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두루 변호사님들의 마음에 실무수습생들도 모두 따뜻함과 감동을 느꼈답니다. 서대문에서 보내는 두루의 마지막을 함께하여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역으로 이사한 두루가 더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기를, 그리고 코로나19의 종식을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