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루 변호사들은 매년 2주간의 자기발전휴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공익변호사다운 창의적인 쉼의 기회를 가지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두루 김용진 변호사는 최근 이 기회를 활용하여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완주하였습니다. 산티아고를 지나 스페인의 땅끝마을인 피스테라까지 가서 대서양의 일몰도 보고 왔다고 합니다. 아래는 이번 휴가에 대한 김용진 변호사의 짤막한 감상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크게 세가지 루트가 있는데, 그 중 “프랑스길”이라고 일컬어지는 메인 루트는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약 800km의 길을 가리킵니다. 보통은 이 길을 도보로 순례하지만, 요즘은 자전거로 순례길에 나서는 사람들도 부쩍 늘어났다고 합니다. 2주간의 시간이 부여된 제게는 자전거가 제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깊은 의미를 품고 나서는 길이지만, 저는 되려 복잡다단한 생각들을 날려버리고 싶어 떠난 여정이었기에 이런 면에서도 자전거가 더욱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하염없이 페달을 돌리다 보면 세상이 조금은 더 단순해 보일 것이라는 생각. 그것이 이 여행의 주된 동기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자전거 초보인 까닭에 숱한 걱정들까지 함께 날려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체력 걱정, 길 걱정, 자전거 걱정, 언어 걱정, 베드버그 걱정 등 크고 작은 걱정들에 부딪힐 때마다 이 계획을 여러 차례 망설였지만, 그보다 더 큰 설렘에 이끌려 결국은 당초의 계획대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전거를 비행기에 싣기 위해 이를 분해하여 포장하는 과정조차 싸이클링 초보인 저에게는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핸들바를 빼다가 본의 아니게 앞 바퀴를 잡아주는 구조물까지 와장창 분해가 되질 않나. 겨우 구해온 포장박스가 자전거 사이즈에 맞지 않음을 출발 전날에야 확인하질 않나. 자전거 포장을 위해서는 페달을 반드시 분리해야 하는데 이를 분리할 때 쓰는 몽키스패너 사이즈가 안 맞질 않나.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이 같은 수난은 그야말로 오프닝에 불과했습니다. 실전에서는 자전거가 아니라 제 몸이 문제였습니다. 훈련된 몸이 아니었던 까닭에 하루하루가 고되었고,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수없이 의심했습니다. 14년전 학부시절 친한 친구들과 자전거로 제주도 한 바퀴를 쉬이 완주했었기에 괜한 자신감을 가지기도 했었지만, 그때는 말 그대로 “14년전”이었습니다.
놀랍게도 하루 이틀 지날수록 몸이 조금씩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고, 하루에 내달린 주행거리도 나중에는 거의 2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점점 좋아져가는 몸 덕분에 당초 목적지였던 산티아고 대성당까지는 무탈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양 무릎은 이미 다 닳아버린 상태였습니다만..) 그런데 애초에 종교적인 목적의 순례가 아니었기에 생각만큼의 감흥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짙은 아쉬움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저는 산티아고를 등지고 계속 페달을 밟았습니다.
새로운 목적지는 스페인의 서쪽 끝인 피스테라. 산티아고에서 약 80km 떨어진 곳이며, 대서양의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마지막 80km의 여정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 날 비도 유난히 많이 내렸고,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고속주행하다가 미끄러져 다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오른팔을 조금(?) 다쳤는데, 손을 쥐었다 폈다 할 수는 있었기에 브레이크는 잡을 수 있겠다 싶어 여정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대서양의 일몰을 보고 싶어서 조금 더 달리고자 마음을 먹었던 것인데, 세차게 내리는 비 탓에 일몰을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종일 낙담한 상태로 페달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인 피스테라에 도착하니 기적처럼 구름이 걷혔습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스페인다운 뚜렷하고도 따스한 일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경관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진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바위 위에 앉아 대서양의 일몰을 가만히 바라보며 미리 챙겨간 캔맥주를 마셨습니다. 다 미지근해져 버렸지만, 여느 맥주보다 시원했습니다. 그 시원한 목넘김과 함께 이 짧은 여정에서 제게 용기를 줬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올랐습니다.
매 고비마다 현지인들, 그리고 다른 순례자들로부터 작지만 결코 작지 않았던 도움들을 받을 수 있었기에 제 부족한 체력으로도 완주가 가능했습니다. 피레네 산맥에서 제가 잃어버린 우비를 길바닥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산정상까지 올라 끝내 주인을 찾아준 영국 청년. (이 우비가 없었다면 비가 세차게 쏟아진 마지막 날 저는 주행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제가 시골마을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자기 승용차로 길을 인도해주겠다며 자기를 믿고 따라오라던 스페인 아저씨. (뉘엿뉘엿 해가 져 갈 때라 이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길바닥에서 노숙을 했어야 했습니다.) 내리막길에서 넘어져 다쳤을 때 저를 돌봐주었던, 그리고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제 상태를 확인해주었던 동지 자전거 순례자들. (외상으로 오른팔이 정상이 아니었던 터라 역시 이들이 아니었으면 끝까지 완주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맥주 한 모금에 한 사람씩,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짧은 여정에 겹쳐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짧은 여정이 자연스레 인생에 비유되어 평소 고마웠던 분들의 얼굴이 다시 하나 둘 대서양의 하늘에 그려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가 다 지도록 많은 사람들을 많이도 그리워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2주간의 휴가는 이렇게 끝이 났지만, 그렇게 하염없이 고마운 사람들을 그리워했던 기억들과 더불어, 끝 없는 밀밭과 올리브나무 숲을 시원한 바람과 함께 가르던 기억들, 도보 순례자에게 “부엔 까미노(Buen Camino)!”라 외치며 무수히 인사를 나눴던 기억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스페인 사람들과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나누던 기억들 모두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밀린 업무를 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p.s 아래에는 제가 찍은 사진을 몇 장 첨부하여 드리오니 함께 감상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