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외국인보호소 학대사건 - 1. 처음으로 내부 영상이 공개되기까지
이한재 변호사
외국인보호소는
출입국 관련법에 의해 본국으로 퇴거되기 직전, 외국인을 대기시킬 수 있는 시설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시설을 사실상 교도소와 같은 구금시설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영장도 없이 사람을 함부로 가두고, 그 기간의 제한도 없어
“법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가깝습니다. 외국인보호소에서 자행되는 외국인에 대한 가혹행위는 그간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어왔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2021년 9월, 외국인보호소의 내부 가혹행위 영상이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되었습니다. 이 자료는 소송 전 증거보전 신청이라는 절차로 법원을 통해 확보한 것입니다.
한달만에 영구 삭제되는 CCTV, 다급한 절차 진행
그간
수많은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외국인보호소의 학대 혐의에 대한 직접적인 영상자료가 나오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CCTV의
보존 기간이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외국인보호소의 독방과 복도 등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이 촬영물은 규정상 보통 90일간 보존하도록 되어 있으나 정작 영상을 보관할 하드디스크의 용량에 대한 규정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용량 부족으로 인해 1달 내외의 기간동안만 겨우
저장되고, 그 이후에 계속해서 새로운 영상이 덧씌워집니다. 한달
안에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원을 통해 증거보전을 신청하여 인정을 받고,
무사히 보호소로부터 자료제출까지 받는 절차를 완료하지 않고서는 CCTV 영상이 영구히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저는
2021. 6. 23. 피해자 M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세 겹의 아크릴판으로 가로막힌 면회실에서 만났습니다. 흐린 아크릴판 때문에 눈조차 마주치기 어려웠지만, 면회용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만으로 서로를 믿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믿는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더 사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M씨는
처음 만난 저에게 독방 감금과 부실한 절차 진행의 증거가 되는 서류의 원본, 자필로 쓴 진술서를 건네주었습니다. 품 속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들을 꺼내 종이봉투에 담아 전달해 주었습니다.
가혹행위가 발생하더라도 외부와 단절된 보호외국인이 한 달 안에 변호사를 만나고, 법원 절차를 재빨리 해치워CCTV를 얻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M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M씨를 만난 것은 최초의 가혹행위가 있었던 2021. 4. 6. 로부터 이미 2개월 반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런데 M씨의 경우, 역설적으로 가혹행위가 1회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계속되고 있었다는 점 덕분에 증거보전이 가능했습니다. 저를 만나기 10여일 전에도 가혹행위가 발생했고, 손목과 발목에는 묶일 때 발생한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사건이 접수되고, 조사가 필요한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특정 부분 CCTV를 보관해 두도록 요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진정취지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진정취지 1번을 “~관련하여 2021. 6.8. 및 2021. 6. 10. CCTV영상녹화물 확보가 긴급합니다.”라고 적고, 따로 인권위에 전화하여 긴급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어 법원 절차도 바로 시작했습니다. ‘민사소송 전 증거보전’이라는 절차는 사실 흔히 쓰이는 절차는 아닙니다. 다양한 시설 관련하여 이러한 활동을 해본 선배 변호사들 및 활동가들에게 수소문하고 나서야 이것이 어떻게 진행되는 절차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M씨의 경우 ‘국가배상소송’을 예정하고 이를 위한 증거가 급히 보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했습니다. M씨가 전달해준 서류와 진술서를 모두 보전의 필요성을 소명할 자료로 하고, 보호소의 CCTV 용량 사정까지 언급하며 왜 이것이 시급한지 썼습니다. 법원에도 따로 전화하여, 보정명령이 계속되면서 절차가 길어지지 않도록 확인도 했습니다. 저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실제로 CCTV 영상을 확보하게 될 확률은 높지 않았습니다.
극적으로 얻은 증거보전 결정, 증거 대신 발견한 허위 공문서
며칠
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보호소에 연락하여 해당일 CCTV 영상을 보존해 두도록 요청하였다는 것입니다. 신청 후 일주일도
되지 않은 6. 30. 에는 수원지방법원으로부터 증거보전 결정도 받았습니다. 법원 절차에서 여러가지 세부사항에 관해 다투며 시간이 끌리다가 기한을 놓치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례적으로 빠른 결정이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가혹행위가 담긴 결정적인 CCTV 영상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화성외국인보호소측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2021. 7. 15. CCTV 영상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힘들게 얻어낸 자료를 보고 저희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당하게도
수십시간 분량의 해당 영상에는 줄곧 빈 방만 등장했습니다. 제가 증거보전을 신청했던 6. 8. 및 6. 10. 해당 시간,
해당 장소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M씨가
직접 전달해준 공문서인 ‘특별계호통고서’를 보고 일시 장소를
정해서 신청했습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특별계호통고서에 기재된 일시와 장소가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통고서가 전반적으로 이상했습니다. 모든 문서의 번호가 동일했고,
특정 두 날짜에 12개의 문서가 모두 작성된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작성자의 서명날인란은 모두 비어 있었습니다. 특정 기간에 대한 문서가
중복으로 작성되어 있거나, 핵심적인 내용인 ‘계호 장소’같은 것이 공란으로 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이 문서 자체가 매우 부실하다는
점은 처음 본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텅 빈 CCTV 영상을
보자 이것은 단순히 ‘부실한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급조된 허위 공문서 내지는 위조 공문서인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었습니다. 가혹행위의 증거를 얻으려다, 위법한 절차 진행의 증거만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받은 증거보전 결정, 두 달만에 받은 CCTV 영상
가혹행위의
일시 장소 특정에 중요한 근거가 될 공문서의 내용이 허위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렇다고 증거 확보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젠 M씨의 기억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M씨는 가혹행위가 있었던 여러 차례의 사건에 대해서 그 상황, 일시, 장소를 세세하기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M씨는 “1분 1초가
모두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까지
했습니다. 괴롭고 슬픈 이유였지만, 그의 구체적인 기억 덕문에
증거를 다시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수원지방법원에서
다시 결정을 받는 데에는 이전보다 더 오랜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이미 CCTV 영상이 삭제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났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의
증거보전 요청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변호사들이 화성외국인보호소를 들락거리자, 화성외국인보호소장이 저와 활동가들에게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보호소장은
새우꺾기 고문 가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CCTV를 보면 변호사님 생각이 바뀔 것이다. 다 보호소 직원들에게 유리한 자료이기 때문에 우리가 CCTV 자료도
다 보존해 두었다”고 말했습니다. 전혀 문제를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러한 면담을 하고, 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가혹행위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법원의 두 번째 증거보전 결정은 2021. 8. 11. 에 이르러서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수원지방법원은 3. 31. 부터 6. 10.까지, 당사자가 기억하고 있는 7개의 일시 장소, 총 400시간 분량에 이르는 CCTV 영상녹화물 전체에 대한 증거보전을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파격적인 법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화성외국인보호소측은 결정의 대상이 된 영상의 대부분이 이미 삭제되었다고 답했습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이니 미리 다 보존해 두었다던 이전의 말과는 상반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최소한 6월의 자료는 존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8. 26., 드디어 M씨가 등장하는 CCTV 자료를 제출받았습니다. 면담 당일부터 두 달이 넘도록 노력한 끝에 가혹행위의 직접 증거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참혹한 현장과 시민사회의 결집, 대응의 시작
영상의
용량이 커, 자료를 하드디스크에 옮기는 데에만 세 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저는 이 영상을 수원지방법원 앞 카페에서 처음으로 확인했습니다. 저절로
눈물이 나고 눈이 질끈 감기는 참혹한 영상이었습니다. 소위 ‘특별계호실’이라 불리는 독방의 열악한 상황과, 말이 통하지 않는 직원들과 소통하려
몸부림치는 M씨와, 참담한 고문 현장이 생생히 찍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몇 장면만 스크린샷을 찍어 함께 대응하고 있는 변호사, 활동가들에게
보냈습니다. 이후 언론에 실리게 되는 바로 그 사진들이었습니다. 이미
보호소의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는데도 모두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이 사진과 영상은 저희뿐만 아니라 이주, 난민 분야 시민사회에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사실을 듣고 아는 것과, 실제 상황을 영상과 사진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의 힘이 모였습니다. ‘외국인보호소’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언론 보도가 이루어지고, 국회의원이
나서고, 법무부 장관이 유감을 표명하게 된 힘이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M씨 사건은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화성외국인보호소 내 가혹행위의 현장이
적나라하게 세상에 드러나게 된 과정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CCTV와
같은 직접적인 자료가 공개된 적이 없었지만, 앞으로 이 사건은 선례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외국인보호소에서 인권침해의 정황이 있다면 사람들은 이 사건을 참고하여 제일 먼저 CCTV 자료부터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이전처럼 쉽게 사실을 묻고, 관심을 돌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모인 시민사회의
관심과 힘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이 사건에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