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가명)씨는 A국에서 야당 당직자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아오다가 난민신청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급하게 도피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외국인보호소에 ‘보호’되었다.
‘보호’명령은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외국인들에게 내려진다. 여기서 ‘보호’란 송환이 가능할 때까지 일정한 장소에 가두어두는 것을 말한다. 사실상 감옥과 다르지 않은 곳에 ‘구금’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무함마드씨가 난민신청자라는 점이다. 난민법과 난민협약은 ‘강제송환금지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난민신청자는 난민심사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강제로 송환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어떠한 인간도 그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될 곳으로 보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보호될 당시 무함마드씨는 난민심사절차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송환이 가능해질’ 여지가 없었다. 심사와 소송은 길게는 3~4년도 걸린다. 하지만 행정당국은 ‘송환의 집행을 확보’한다며 그를 기약 없이 가두어버렸다.
과반의 헌법재판관이 지적한 제도의 위헌성, 그러나 바뀌지 않는 실무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 및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되어 피보호자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
2018년 2월, 5인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보호명령제도가 헌법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총 9인의 재판관 중 과반수가 보호명령제도의 위헌성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보호명령제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위헌결정을 위해서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위헌정족수에서 한 명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반의 재판관이 위헌이라고 판단하였을 정도로 보호명령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행정당국은 보호명령을 내릴 때 더욱 신중해야 할 것이고 법원도 인권보호의 관점에서 보호명령제도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에도 실무는 바뀌지 않았다. 무함마드씨처럼 탈출과정에서 법을 위반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던 난민신청자에게도, 행정당국은 여전히 ‘기계적’으로 보호명령을 내리고 있다.
법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판에 적용될 법률조항이 위헌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면,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의 판단을 구하거나, 법률을 합헌적으로 해석해서 보호명령의 대상이 되는 범위를 좁히거나, 더욱 엄격한 잣대에서 보호명령의 적법성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여전히 보호명령의 위법성을 지적하거나, 그 근거법률의 위헌성을 우려하는 판결은 극히 드물다. 위헌의 소지가 다분한 ‘보호명령제도’는 무비판적으로 답습되고 있다.
앞으로 남은 ‘한 걸음’
이러한 상황에서 이 사건을 맡게 되었다. 무함마드씨를 대리해서 강제퇴거명령과 보호명령의 위법성을 다투었고, 재판을 받는 동안에는 구금을 멈추어 달라는 집행정지신청을 했다. 무엇보다도, 제도 자체가 위헌이라는 판단을 이끌어내려 했다.
다행히 집행정지신청은 인용되었다. 판결을 받을 때까지는 무함마드씨가 외국인보호소를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구금이 계속될 경우 재판을 서두를 수밖에 없어 제도의 위헌성에 대해 충분히 주장하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재판부 입장에서도 위헌의 소지가 다분한 법률에 근거해서 무함마드씨를 계속 구금하는 것은 부담이 되었으리라.
위헌을 주장하는 서면의 작성을 시작할 때는 ‘이미 위헌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주제이니 작성에 별 어려움이 없겠지’라고, 쉽게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이미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결정을 뒤집는 것은 간단치 않다. 기존의 합헌 입장은 완고해 보였고, 걱정은 깊어 갔다.
고민 끝에 제도가 운용되고 있는 ‘현실’ 에 집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헌법재판소의 합헌 의견은 ‘강제퇴거대상자들을 보호하지 않을 경우 그들이 범죄에 연루될 수 있다’고 막연히 추측하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평균 보호기간이 11일이므로 장기보호의 우려가 적다’고 하는데, 평균의 함정에 빠져 있는 주장 아닐까? ‘보호에 대한 이의신청제도나 보호기간연장 승인제도가 있으므로 법적 통제수단이 충분하다’고 하는데,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범죄 통계, 보호기간의 분포도, 이의신청 인용 및 보호기간 불연장의 횟수를 찾아보았고, 합헌 의견이 잘못된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었다.
새로운 법리 주장도 추가했다. 기존 사건에서는 영장주의 위배나 명확성 원칙 위배가 직접적인 쟁점이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법원의 판단 없이 외국인을 구금하는 문제와 구금사유가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문제도 지적하기로 했다.
그 ‘한 걸음’ 이후에 대한 준비
아직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내려지지 않았다. 불안정한 법적 지위로 지내고 있는 무함마드씨를 생각할 때면 지체되는 결정에 속이 탔고, 이번에도 합헌 결정이 나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위헌 이후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었다. 언젠가는 보호명령제도가 위헌으로 판단되거나 이에 대한 법개정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패소하더라도, 계속해서 이 문제를 지적할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굴곡이 있을지언정 ‘인권’의 이정표를 따라 사회가 나아갈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변화의 방향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위헌’ 이후의 제도를 잘 설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땜질 식의 처방이어서는 안 된다.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대안적 제도가 필요하다. 이 제도가 제 길에 들어설 때까지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 길에 두루가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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