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는 정부의 대대적인 대책이 발표되곤 합니다. 그런데 매번 아동학대 사건 이후에 발표되는 아동학대 대응 대책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로 인한 안타까운 소식이 그치지 않는 것은 아동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던 지점에 대한 독립적이고 종합적인 진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때 여론의 뭇매를 맞는 곳에 책임을 지우는 대책으로는 한 곳을 막으면 다른 한 곳에서 문제가 터지는 악순환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가능한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권한 있는 조사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시민사회는 지난 2013년과 2016년에 자발적으로 ‘울주 아동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 ‘대구ㆍ포천 입양아동 학대ㆍ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한 경험이 있습니다. 조사권한은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보완하였고, 인력과 자원은 아동보호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모인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채웠습니다. 부족한 정보와 정부기관의 협력에도 불구하고 의미있는 정책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의원실의 도움으로 입수할 수 있는 자료와 진술은 시민사회가 질의한 범위를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제한된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자료 사이에서 맥락을 짚어내는 것은 많은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여 증명할 수 없는 가설들은 보고서에 담을 수도 없습니다. 진상조사의 주체에게는 명백한 조사권한이 필요합니다.
2013년과 2016년 결성된 진상조사위원회는 자발적인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로 구성되다 보니, 교사, 의사, 경찰 등 다른 전문가들의 참여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법률전문가가 의료현장이나 교육현장의 상황을 이해하여 살피기는 어렵습니다. 아동학대는 자치경찰과 국가경찰, 행정안전부, 아동보호전문기관과 보건복지부, 법무부와 법원, 교육부, 지방자치단체가 유기적으로 역할을 정립하고 협력하여 대응해야 합니다. 이 중 어느 한 부처에 소속되어서는 조사의 빈틈을 다 채울 수는 없습니다. 보건복지부 산하에 놓인 진상조사위원회는 법무부나 행정안전부 등의 업무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고, 정보의 획득이 제한적이었던 민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보건복지부 산하 진상조사위원회는 독립적으로 보건복지부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의견을 제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관련된 모든 부처를 종합하여 조망할 수 있고, 모든 부처에 대해서 독립적인 위치에 위원회가 있어야 합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대통령 직속(또는 적어도 국무총리 직속)의 위원회가 되어야 합니다.
더 큰 고개는 조사보고서 발간 이후입니다. 민간에서 작성한 조사보고서에 대하여 정부는 반드시 정책으로 반영해야 할 의무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2013년과 2016년 진상조사에서 제안된 정책 중 많은 것(출생등록 의무화 등)이 아직도 실현되지 않았거나,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책상 서랍 속 사탕처럼 하나씩 꺼내져서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상담원ㆍ전담공무원과 경찰 사이의 상호통보와 동행출동 활성화 등). 특히 예산의 확충이 필요한 대책일 수록 서랍 깊숙이 놓여 있습니다. 아동학대에 대해 정부가 구속될 수 있는 대안은 정부에서 나와야 합니다.
무엇보다 폭력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국가의 역할입니다. 동료 시민의 고통과 피해 앞에 처연해진 시민사회를 향해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거나 ‘우리의 역할이 아니었다’, ‘우리는 권한이 없다’와 같은 변명을 해서는 안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또는 부각된 문제점에 대한 대책만 만지작거려서도 안됩니다. 시민의 고통을 묵과한 지점을 찾아 반성하고, 고립된 상황에서 폭력을 견딘 이들의 행적과 시간의 기록에서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진술이 무엇인지 해석하고 찾아내야 합니다.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책임질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이에, 시민사회는 원안에서 후퇴없는 진상조사특별법의 통과를 요구합니다. 조사권한이 있는, 보건복지부에 소속되지 않은, 정부가 구속될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진상조사위원회를 요구합니다. 시민의 죽음 앞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국가가 되길 요구합니다.
담당변호사: 강정은, 김진, 엄선희, 마한얼 (02-6200-1714)